해외 투자자들 눈에 비친 불안한 한국

2025-03-24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바레인, 미얀마, 필리핀, 이집트, 파키스탄, 태국, 우크라이나. ‘신흥시장 및 개발경제국’ 범주에 속하는 이들 국가는 2000년 이후 정치적 불안이나 전쟁 발발로 인해 계엄령 또는 비상사태가 선언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계엄령이 선포된 후 몇 시간 만에 해제된 우리나라 상황은 이 국가들과 여러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경제 규모와 안정성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 경쟁력에서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주식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의 순매도 규모가 8조 원에 육박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리스크가 주요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위험자산 회피 심리와 지속적인 원화 약세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기업 투자 시장의 상황은 주식시장과는 다소 다르다. 비상장 기업의 지분에 직접 투자하거나, 사모펀드에 출자해 간접 투자하는 연기금·금융사·재간접펀드 등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몇 년간 투자금이 묶이는 본질적 한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 국내 기업과 사모펀드의 해외 투자자 유치 규모가 크지 않았을 때는, 북한의 위협이나 다소 불투명한 세금 체계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성공적인 투자 사례들이 계속 나오면서, 한국 기업 투자 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왔다.

지난해 말 계엄 선언 이후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은, 그런 흐름에 부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최종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뉴욕이나 런던 등에 거주하는 투자심의위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경우 변화의 정도가 두드러진다. “왜 지금 한국에 투자해야 하는가. 대신 일본에 투자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아직 투자 사례는 많지 않지만, 한국 시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던 일본 투자자들의 반응은 더 신중해지고 있다. 일부는 한국에 대한 투자 검토 자체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긍정적인 한·일 관계가 유지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다.

투자 업계가 최대한 빨리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을 직접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회복력을 믿는 해외 투자자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의 범위에 모든 정치·사회적 불확실성까지 포함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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