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정부 추경안 시정연설 발표
권한대행으론 최규하 이후 46년만
“미국발 관세대응, AI 경쟁력 강화”
“재정도움 닿아야할 시기 바로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24일 국회에서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통해 “산불 피해 복구와 미국발 관세 대응, AI(인공지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안의 조속한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관세와 재난 대응 등 추경안에 집중된 연설이지만 대선 차출론이 일고 있는 한 권한대행의 공개 연설로 출마선언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연설에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전례 없는 미국발 관세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시정연설은 1979년 11월 최규하 당시 권한대행 이후 46년만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현직 대통령으로는 11년만에 시정연설에 불참했었다.
이번 추경안은 ▲재해·재난 대응(3.2조원) ▲통상 및 AI 지원(4.4조원) ▲민생 안정(4.3조원) 등 세 분야를 중심으로 편성됐다. 재원은 세계잉여금 및 기금 자체 자금 등 가용재원 4조1000억원과 8조10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AI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다.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1호 공약으로 AI 분야에 천문학적인 투자 공약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 권한대행은 “AI의 연산과 학습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연내 1만장 확보하겠다”며 “우수한 민간 AI 기업들로 구성된 ‘AI 국가대표 정예팀’을 선발해 챗GPT와 같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LLM(거대언어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AI 분야 추경 예산은 총 1조8000억원 규모로, 기존 본예산까지 합치면 올해 정부 AI 예산은 총 3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 권한대행은 “이는 지난해 정부가 AI 민관 합동 투자계획으로 2027년까지 공공분야에서 총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던 목표를 올해로 앞당겨 초과 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남지역 초대형 산불 대응을 위해서는 재해대책비를 기존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수준으로 3배 대폭 보강한다. 산불 예방 및 조기 진압 역량 제고를 위해 AI 감시카메라, 고성능 드론 등 첨단장비를 확충하는 한편, 산림헬기 6대, 다목적 산불진화차 48대 등 진화 인프라도 추가 도입한다.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 금융기관에 1조5000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대출, 보증, 보험 등 특별자금 25조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관세 피해 우려 기업의 애로 해소를 위해 수출 바우처를 기존 약 3000개사에서 약 8000개사로 확대 지원한다.
소상공인 지원책으로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소상공인이 공과금, 보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최대 50만원 한도의 ‘부담경감 크레딧’을 신설하고, 융자·보증 등 정책자금 2조5000억원을 확충한다. 영세 사업자 매출 기반 확충을 위해 연매출 30억원 이하 점포에서 사용한 카드 소비 증가분의 20%를 온누리 상품권으로 환급하는 방안도 담겼다.
한 권한대행은 “과거 우리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이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만들었던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1997년 IMF(국제구제금융)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부 재정이라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에게 닿아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선 한 권한대행의 시정연설을 두고 대선 차출론 속에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대행께서는 그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며 출마론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즉시 현장에 온기가 빠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집행계획을 철저히 마련하는 등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추경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중 처리될 전망이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