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르렁대는 재규어, 부엉거리는 부엉이, 찍찍대는 생쥐.’
3일 오후 4시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에는 이런 소리까지 청각장애인용 자막으로 표현된다. 극 중 나오는 인물, 정령, 동물마다 어울리는 단어를 구분해 말투와 톤을 살려낸 세밀한 작업이다. 그 결과 본체는 재규어인 지니(김우빈)의 심복 세이드 역을 연기한 고규필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가 본체로 나타났는지, 아니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지 자막만으로 구분이 된다.
지난해 뜨거운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는 개그맨 김경식, 이동우가 시각장애인용 화면 해설 내레이터로 나섰다. 두 명의 내레이터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화면 해설에서는 생소한 형식에 도전했는데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강내영 화면 해설 작가는 “비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예능 같은 화면 해설이 탄생했다”는 주변 반응에 크게 기뻤다고 전해왔다. 김경식과 이동우는 올 겨울 공개 예정인 시즌2에도 화면 해설로 참여한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환경은 단순히 대사를 옮기는 것을 넘어, 자막이나 해설을 통해 프로그램 성격, 캐릭터의 개성과 장면의 분위기까지 전달한다. 접근성을 ‘선택 가치’가 아닌 ‘기본 가치’로 자리 잡도록 인식을 바꾸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선다는 의미다.
넷플릭스의 배리어프리 노력이 시작된 것은 9년 전이다. 화면 해설, 청각장애인용 자막은 이제 많은 작품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또 단순히 콘텐트 안에서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홈 화면이나 예고편 단계에도 적용돼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동우는 “일방적으로 주어진 콘텐트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볼 수 있다는 건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의미”라고 중앙일보에 강조했다.

지난 1일 넷플릭스는 사내에서 진행한 배리어프리 사례를 모아 ‘비욘드 배리어스’(Beyond Barriers)를 발간했다. ‘모든 회원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넷플릭스 철학 아래 배리어프리 콘텐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작기가 담겼다. 일례로 ‘중증외상센터’는 의학과 액션 동작 해설까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초고난도 작업이었으며, ‘D.P’는 군대와 관련한 사소한 용어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해설을 해야 했다고 한다.
사례집 발간을 기념해 같은 날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국립서울맹학교, 서울애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배리어프리 상영회도 열었다. 주인공 걸그룹 헌트릭스의 다양한 표정,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OST ‘골든’을 섬세한 묘사의 자막과 화면 해설로 전달했다. 학생들은 “뒤늦게라도 빌보드 차트를 휩쓴 음악과 영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수연 넷플릭스 시니어 로컬라이제이션 프로듀서는 시사 이후 진행된 배리어프리 간담회에서 “넷플릭스 전체 콘텐트 기준 80% 비중으로 청각장애인용 자막이 제공된다. 지난해 한국 콘텐트 시청시간 중 44%가 청각장애인용 자막으로 시청된 것으로 조사돼, 국내의 비장애인들도 이 자막을 함께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접근성 확대에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루시 황 넷플릭스 더빙 타이틀 매니저는 “모든 콘텐트에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이 제공된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비즈니스 전략의 일종”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