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배치플랜트′ 확산 움직임에…래미콘 업계 "생존 위협" 반발

2025-03-24

현대건설, 최근 서울 주택 현장서 배치플랜트(BP) 활용 시작

국토부도 '건설공사 품질관리 지침' 개정안 행정예고하며 규제 완화

레미콘 업계 "생존권 위협… 즉각 대응할 것"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건설업계가 공사현장에 레미콘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배치플랜트(Batcher Plant, BP) 설치를 확대할 계획을 세우면서 레미콘 업계와의 마찰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가 침체된 건설업황을 개선하기 위해 설치 규정 개정에 앞장서며 건설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레미콘 업계는 정부 조치가 중소 건설자재업체와의 상생을 무너뜨리는 조치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BP를 설치한 주택 건설현장이 늘고 있다. 현대건설은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 재건축(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 현장에 BP를 설치해 사용 중이다. 주택 건설 현장에 BP가 들어오는 첫 사례다.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현장에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착공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다방면으로 활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BP는 시멘트, 모래, 자갈 등 콘크리트 구성 재료를 조합해 레미콘을 만드는 시설이다. 현장 BP는 레미콘 생산부터 출하까지 전 과정을 공사 현장에서 끝낼 수 있다.

레미콘은 콘크리트를 섞기 시작한 후 90분 이내에 타설하지 않으면 굳는다. 품질이 떨어진 레미콘은 전량 폐기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다른 건자재와 달리 미리 제작해 보관하거나 주문할 수도 없다. 타설할 때마다 필요한 양을 최대한 잘 계산해야 해 현장 근로자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BP는 레미콘 믹서트럭이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교통 체증이 자주 발생하는 도심 현장에서 주로 쓰였다. 건설사 입장에선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레미콘 품질 확보가 가능한 동시에 버려지는 자재를 최대한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 공사비 절감이 가능하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VMR)에 따르면 BP 시장은 세계적 성장세에 진입했다. 2022년 25억 달러였던 거래 규모는 2030년까지 41억 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의 예상 매출 증가율은 6.5%다.

한국에선 토목과 인프라가 아닌 주택 건설현장에선 BP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에 따라 도서·벽지·교통 체증 지역이라 90분 이내에 레미콘 도달이 불가능했음이 인정되는 곳에만 BP 설치가 허용됐고, 이를 통해 생산·공급할 수 있는 물량도 소요량의 50%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달 국토부가 해당 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주택 시장에서의 BP 활용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는 지역과 생산량 기준이 삭제됐고, BP를 설치할 수 있는 주체도 현행 시공자에서 발주자까지 늘어난다. 발주자나 시공자가 시행하는 인근의 건설공사 현장까지도 레미콘을 반출할 수 있다.

3기 신도시 건설 현장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대규모 공공공사에서 공사비를 줄이고 콘크리트 공급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 공사의 품질 확보와 적기 시공을 위해 관급 자재 조달 체계를 개선하려 한 것"이라며 "건설 공사비가 안정을 찾고 건설시장이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 건설업계 종사자는 "레미콘 가격이 만만치 않다보니 현장 타설 과정에서 항상 적정량을 주문하는 게 골칫덩이였는데, 이번에 정책적 여건이 조성되면서 점차 확장되면 전반적으로 긍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며 "일단 수급이 불안정하거나 가격이 갑자기 올라 공사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자재는 공사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시설물의 품질과 안전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정부 정책은 아직 공공공사에 한정돼 있지만 이번 조치 자체가 자재 가격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는 점에선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문제는 레미콘 업계와의 갈등에 있다. 레미콘업계는 이번 정부 조치가 기존 건설자재 업체를 역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23일 의견서를 내고 "레미콘 가동률이 역대 최저인 17%로 낮아진 상황에서 현장 BP 설치 조건을 완화해 새로운 공급자를 진입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주변 레미콘업체들의 수주 기회를 박탈하고 심각한 생산 과잉화를 부추겨 업계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며 "생존권 사수를 위해 전국 1079개 레미콘업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도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레미콘뿐 아니라 운송, 원재료 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지침 재개정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나 최대한 많은 의견을 들어본 후 현 개정안을 유지할지, 다시 재정비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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