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월드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 "전쟁터에선 남성들이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고요? 왜죠? 나도 총이 있는데요. 심지어 내가 남성들보다 먼저 적을 쏠 수도 있습니다."
#. "남성으로만 구성된 한 여단에 근무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나에게 '적대적인 청중들'이었습니다. 누군가 '야전에서 여성의 위생은 어때요?'라고 물었던 게 생각나요. 내가 '월경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라고 되물었더니 다들 폭소하더군요. 여성도 전쟁터에서 스스로를 돌볼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약 40년의 군 생활을 거쳐 '캐나다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전투병과 장군'에 이어 지난해 7월 '국방참모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주요 20개국(G20) 중 최초의 여성 군 수장'이란 타이틀까지 갖게 된 제니 캐리그냔(56) 장군이 밝힌 일화들이다. 그는 "여성이어서, 네 자녀의 엄마여서, 그런 이유들로 인해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나 그럼에도 매 순간 이렇게 스스로 되뇌이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캐나다 시사지 맥클린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왜 안 돼?(Why not?) 나도 할 수 있는데"는 그의 신조이자 인생 그 자체다.
캐나다 남동부 퀘벡주 광산마을인 아스베스토스에서 자란 캐리그냔은 발레나 재즈댄스를 좋아해 댄서를 꿈꾸던 소녀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소녀 같지만 분명 범상치 않은 면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남자 형제들과 같이 전기톱이나 장난감 총을 다루며 놀았다. 캐리그냔은 "어머니는 내가 남자 형제들과 함께 불도저 장난감을 갖고 놀게 해 주었다"고 회상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남녀 동일임금'을 외쳤던 캐리그냔의 어머니는 후에 그가 "남성이 하는 일은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세우게 해 준 장본인이다.
군 생활 18년 만에 전투 부대 첫 여지휘관
범상치 않았던 소녀는 17세 때 고향 마을을 떠나 1986년 캐나다 왕립군사대학(RMC)에 가면서 군인의 길에 발을 들였다. RMC가 여성의 입학을 허용한 지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 유달리 씩씩하긴 했지만 체구가 작아 부모의 걱정을 샀었다. 하지만 1990년 캐나다 군 공병대에 소위로 임관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안정화군(SFOR) 남서부 다국적 사단의 '팔라디움 작전'(1996~2004,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SFOR을 지원한 캐나다의 군사작전) 참여, 캐나다 국가방위본부(NDHQ) 참모총장의 군사계획 및 작전 국장 역임 등 군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당당한 군인으로 거듭났다. 2008년 6월엔 군 생활 18년 만에 제5 공병연대 지휘관이 됐는데, 이는 캐나다에서 전투 무기를 운용하는 부대를 여성이 지휘한 첫 사례였다.
캐나다, 5명 중 1명 여군…"안보에 방해 아냐"
물론 역경도 있었다. 캐리그냔은 군인의 성별이 전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지만, 딱 하나 문제의식을 가진 부문이 있었다. 바로 군용 장비가 남성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설계됐다는 점이었다. 군용 배낭에 있는 기다란 금속 프레임에 허리가 긁히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할 때는 자살폭탄 테러를 간신히 피한 일도 있었다. 그는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그렇다 보니 군인이자 아내이자 엄마, 세 가지 역할을 병행하며 생긴 크고 작은 대다수의 난관들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가 5개월간의 보스니아 파병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 두 살이었던 아들 이안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펜실베이니아 훈련을 갔을 땐 막내딸 카밀이 불과 생후 2개월이었는데, 훈련지 근처 호텔에서 친척들이 아이를 돌봐주고 있으면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마다 아이에게 달려가 모유 수유를 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이들은 캐리그냔의 근무지 변경에 따라 무려 9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가족 모두 묵묵히 그 길을 따라줬다. 현재 그의 네 자녀 중 두 명은 어머니를 따라 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캐리그냔은 그의 가족에 대해 "나의 가장 큰 동맹"이라고 표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캐나다 헬리팩스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당시 제니 캐리그냔은 이렇게 말했다.
"전투 무기 장교로서 39년간 경력을 쌓고 전 세계의 많은 작전에서 목숨을 걸었지만, 2024년에도 여전히 여성이 국방에 기여한 것을 정당화하고 역설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후보자 방송인 출신 피트 헤그세스가 "여성의 전투 참여는 전력이 약해지게 만든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캐나다군이 2023년 5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군 병력의 16% 정도가 여군이다. 각 군 별로 보면 해군(20.7%)과 공군(20.3%)은 5명 중 1명이 여군이고, 육군은 13.9%가 여군이다. 캐리그냔은 "여성들은 위험에 처한 나라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며 "여성은 국방과 국가안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다"고 강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