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약품(128940)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 대표에 김재교(사진) 메리츠증권 부사장(IND 본부장)이 내정됐다. 한미사이언스가 전문경영인을 대표로 선임하는 것은 지주회사 전환 이후 처음이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이 선진 지배구조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머크식 선진 경영에 첫발을 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제약과 투자 분야에 정통한 인사를 대표로 선임해 지주사의 역할 강화에 나선 것으로도 해석된다.
25일 금융투자 및 제약 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는 다음달 이사회를 열고 김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한미약품 그룹은 2010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래 창업주 고 임성기 전 회장,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임종윤 북경한미 동사장, 임종훈 전 대표 등 오너 일가가 한미사이언스 대표직을 맡아왔다. 김 부사장은 최초 외부 출신 대표가 된다. 한미사이언스는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심병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상무도 영입하기로 했다.
김 부사장은 제약 산업과 투자에 대한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1990년 유한양행(000100)에 입사해 경영기획, 글로벌전략, 인수합병, 기술수출 등 전반적인 투자 업무를 30년 간 총괄해왔다. 특히 2018년 글로벌 빅파마 얀센에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을 1조 4000억 원에 기술수출하는 ‘빅딜’을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21년 메리츠증권에 합류해 바이오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IND 본부를 이끌었다. 김 부사장은 지주사 대표로 한미약품그룹의 전반적인 투자 전략을 총괄하고 계열사 사업 조율 및 기술 이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한미사이언스는 대표 선임을 시작으로 머크식 선진 지배구조 확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송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은 글로벌 제약사 머크의 경영 구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머크는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유지하면서도 회사의 경영은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면서 관리 감독은 머크 일가가 하는 구조다. 송 회장은 지난해 7월 “한미약품그룹은 기존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쇄신하고 현장 중심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재편, 사업 경쟁력과 효율성 강화를 통해 경영을 시급히 안정화할 방침”이라며 “대주주는 사외이사와 함께 참여형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 경영을 지원하고 감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현 대표인 송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는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 업계에서는 상당수 제약사가 승계를 앞 둔 만큼 한미약품그룹의 정상화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갈등이 본격화 됐던 지난해 초(3만 9200원) 대비 이날 2만 8650원에 마감하면서 26.91%나 기업 가치가 하락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송 회장·신동국 회장·임주현 부회장·라데팡스파트너스(킬링턴 유한회사) 등 4인 연합이 57.20%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권 갈등을 종식시킨 만큼 경영 정상화를 통해 신약 개발 명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및 조직 재정비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과제들이 쌓여 있는 만큼 지주사 대표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신약 개발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전문경영인 시스템으로 얼마나 조직을 잘 이끌어갈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