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키스’에 붉은 원반이 적혈구라고? 과학적 분석해보니

2025-01-31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대표작인 ‘키스’는 금빛 아우라로 가득차있다. 여자의 옷에는 붉은 원반 패턴이 들어가 있는데, 이로 인해 금빛 색감이 더욱 부각된다.

붉은 원반 패턴은 당대 생물학과 해부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클림트가 적혈구의 모습을 본따서 그린 것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이를 국내 연구진이 검증한 연구결과가 학술지에 실렸다.

1일 국내 의료계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를 보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에 나타난 적혈구에 대한 의료 예술적 분석’(박현미 외·Medico-Artistic Analysis of Red Blood Cells in Gustav Klimt’s ‘The Kiss’)이 최근 게재됐다. 의학, 생물학, 미술학, 해부학 등을 전문분야로 둔 연구진은 클림트의 ‘키스’에 나온 붉은 원반 모양이 적혈구를 본뜬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했다.

연구진은 문헌 연구, 사료 분석 등을 통해 작품 속 붉은 원반이 실제 적혈구 모습과 얼마나 유사한지 비교했다. 그림 감상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해 이 원반이 작품에서 가지는 중요성과 의미도 알아봤다.

논문에서는 클림트가 ‘키스’를 그리던 시기에 그가 처해있던 역사적·과학적 환경을 짚었다. 클림트는 과학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던 ‘빈 모더니즘’의 흐름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빈 사교계의 핵심 인물이자 클림트와 가까이 지냈던 베르타 주커칸들(Berta Zuckerkandl)의 남편인 에밀 주커간들은 빈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당시 주커칸들 교수는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해부학, 생물학, 발생학, 진화론 등의 내용이 포함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키스’에 있는 붉은 원반 모양을 독일의 생물학자이자 화가였던 에른스트 헤켈이 1903년에 쓴 <인간의 진화>(The Evolution of Man: A Popular Scientific Study)에 나온 적혈구 이미지와 비교했다. 독일의 해부학자인 요하네스 소보타 박사의 1092년 저서에 실린 인간 혈액 세포 모양과도 비교했다. 붉은 원반 모양은 두 책에 실린 적혈구 이미지와 매우 유사했다.

클림트는 혈액 속 혈구 도판이 실린 백과사전을 당시에 소유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같은 사실들을 토대로 “클림트가 자신의 작품에서 시각적 요소로 활용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소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클림트의 ‘과학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앞서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은 클림트가 정자, 난자 등 과학 발전으로 새롭게 발견해낸 생물학적 형상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강연을 접했던 해부학자 유임주(고려대 의과대학 교수)는 ‘키스’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이루고 이것이 세포분열을 해 ‘오디배’에 이르는 인간 발생 첫 3일 동안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2021년에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번 논문에서 연구진은 클림트가 생명과 활력의 강력한 상징으로서 적혈구 모양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고 해석했다. 연구진은 “여성의 가슴 위에 붉은색 패턴을 전략적으로 배치한 것은 활력의 원천인 심장을 상징하고, 다리 사이에 배치한 것은 월경과 다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림 속 여성은 팔꿈치를 가슴 부분에서 접고 있는데, 이 모양과 위치가 “심장 모양을 상징적으로 형성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붉은 원반 패턴은 ‘키스’에서 금빛 색채 못지 않게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2002년 울산국제아트페어(UiAF) 기간 중 참석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키스’ 원본과 원본의 붉은 원반 패턴을 제거한 수정본을 보여주고 그림에 대한 인식을 비교했다. 설문대상자들은 두 그림 사이에 느낌, 색상 인식, 분위기 및 조명에서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설문 대상자들은 원본 그림을 설명하는 감정으로는 강렬함·화려함·활기·생기 등의 감정 등을 골랐으나, 붉은 원반을 제거한 버전을 보고서는 단조로움·생기없음·죽음·우울함이라는 감정을 골랐다. 원본 그림에 대해 따뜻함·노란색·햇볕·화려함 등의 조명을 떠올리고 묘사했으나, 수정본에 대해서는 ‘어둡다’고 묘사했다.

연구진은 “클림트가 적혈구와 같은 아이콘을 의도적으로 그림에 적용했으며, 해부학적 상징주의와 감정적 공명을 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이 연구는 클림트가 적혈구 형태의 아이콘을 이용해 복잡한 의학적 의미와 감정적 의미를 자신의 작품에 엮어내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과학적 개념을 시각적이며 감정적인 표현과 결합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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