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 다 날아가고
조명리(1697∼1756)
기러기 다 날아가고 서리는 몇 번 온고
추야(秋夜)도 길고 길사 객수(客愁)도 하도 하다
밤중만 만정(滿庭) 월색(月色)이 고향 본 듯하여라
-병와가곡집
병든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
기러기는 다 날아가고 서리는 몇 번이나 내렸는고? 가을밤은 길고도 길고, 객지에 느끼는 나그네의 시름은 많고도 많다. 밤이 깊으니 뜰에 가득한 달빛이 고향을 본 듯하구나.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가을은 시의 계절이다. 많은 명시들이 가을에 태어났고, 가을을 소재로 한 시들도 많다.
이 시조를 지은 조명리는 숙종에서 영조 연간을 살다간 문신이다. 문과를 거쳐 조정에 진출하였고, 정언으로 있을 때 왕이 시정해야 할 3개조의 치민책(治民策)을 영조에게 올려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왕의 미움을 사 유배당한 이태중을 한림직에 추천한 사실이 있었다 하여 벼슬이 삭탈됐다. 그 뒤 교리로 복직됐으나 소론 이광좌의 당으로 지목돼 2년간의 유배형을 당했다. 이 시조는 그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벼슬길에 고초를 겪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명작을 빚는 계기가 되었다. 병든 조개가 진주를 품는다던가?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