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세계인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식의 가장 오래된 짝, 한국 술에 주목해야 할 때.
이번 칼럼에서는 한식의 풍미를 끌어올려줄 한국 술 페어링에 대해 알아본다.
세계 어디서든 한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요즘. 페어링 주류로는 수천 년간 한식과 함께 발달하며 합을 맞춰온 한국 술만 한 게 없다.
그러나 국내외 한식당에서 한식의 곁을 지키는 건 대부분 와인을 비롯한 해외 주류다. 한국술 페어링에 열정적인 한식당을 찾기 힘든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직 낯선 탓이 크다.

현장에서 페어링을 주도할 전문 인력의 부재도 한몫하는데, 과거 파리, 뉴욕, 홍콩 등지 한식당에 한국 술 페어링을 추천하고, 큐레이션 교육을 제안했을 때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매우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한식이 유례없는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술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 다. 몇 해 전 방문했던 파리의 한식당은 ‘왜 한국 술을 판매하지 않냐’라는 질문을 무수히 들었다고 한다. 해외 방식을 따라 와인 페어링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내 소믈리에 교육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
세계 각지에서 한식을 즐기는 지금, 한국 술 페어링의 작은 길라잡이가 될 팁을 전한다.
생채부터 양념 육류까지… 한식의 다층성을 아우르다
한국 술은 최근 양조장마다 실험을 이어가며 변주를 이루는데, 생산 방식에 따라 탁주, 약주, 청주, 한국 와인을 필두로 한 과실주, 증류식 소주, 일반증류주, 리큐르, 기타주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약주와 청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맑은 쌀 술로, 은근한 단맛, 적절한 산미, 화사한 꽃 향이 두드러지며, 발효 횟수나 당도에 따라 라이트에서 풀보디까지 다양한 무게감을 보여준다.

나물 무침, 생선회, 산적, 해물전, 닭볶 음까지 거의 모든 한식과 무난하게 어울리는 주종이다. 코스 요리에서는 시작을 여는 잔으로 적절하며, 한국 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기 좋다. 탁주는 쌀 본연의 단맛을 갖춘 술이다. 약청주보다 도수가 낮은 편이지만, 질감은 더 무겁기에 코스로 즐길 때는 약청주 다음으로 음용할 것을 추천한다.
페어링 요리로는 무게감이 비슷한 고추장 베이스의 요리가 좋다. 반대로 국수나 죽, 부라타나 리코타 치즈를 곁들여 재해석한 채소 요리 등 비교적 가벼운 요리와도 좋은 상성을 보여준다. 묵직한 고기 요리와 먹으면 무게감이 맞지 않아 일반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한국 와인은 포도뿐 아니라 다양한 과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점이 특징이 다. 사과, 복숭아, 오미자, 오디, 복분자, 자두, 매실, 살구, 비파, 딸기, 블루베 리, 배, 감, 한라봉, 귤, 다래, 키위 등 한반도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과실로 와인을 생산한다. 과즙에 주정을 타는 것이 아니라 과실을 으깨서 발효하기에 본연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품었다. 웰컴 드링크로 제격이며, 머루나 MBA 등 포도를 발효해 오크통에 숙성한 와인은 제법 묵직하면서도 향이 맑아 돼지구이나 제육볶음 등 양념 육류 요리와 좋은 페어링을 보여준다.

쌀이나 밀을 활용하는 증류주는 25도에서 40도까지 알코올 도수의 범위가 넓어 고기 요리와 최적의 페어링을 자랑한다. 한식의 고기 요리는 고기 종류 부터 부위, 조리법, 양념, 곁들이는 채소까지 매우 다양해 모든 요소를 아우를수 있는 증류식 소주가 제격이다.
감압식 증류에서 오는 부드러움, 상압식 증류의 강한 타격감, 항아리 숙성에서 비롯된 둥근 질감 등 다양한 선호를 충족할 수 있다. 최근 전국 곳곳의 양조장에서 소주를 오크통에 숙성하는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해외 품평회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오크 숙성 소주는 디저트와 즐겨도 좋고, 단독으로도 식사 마무리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 외에도 산미가 좋은 쌀맥주나 탄산감이 좋고 쌉싸름한 미드는 아페리티프 로서 활용도가 높고, 허브를 활용한 진은 나물 요리와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소믈리에의 관심과 역량에 따라 매우 다양한 페어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술에 대한 관심은 소믈리에의 절묘한 주류 페어링과 재치 있는 설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필자가 한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할 당시, 손님이 한국 술을 잘 선택하지 않아 모든 주종을 글라스와 샘플러로 선보 이며 큰 호응을 얻은 경험이 있다.
위에 언급한 사례 외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페어링을 경험하는 손님이 늘어나면 결국 한국 술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한식을 넘어 한국 술에 대한 대외적 호기심이 부쩍 늘어가는 만큼, 한식과 한국 술 전문가, 정부 기관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할 때다.
해외 와이너 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명주 반열에 오른 것처럼, 차근차근 다음 세대를 위한 시금석을 마련하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란다. 수년 안에 한식 옆 제자리를 찾은 한국 술의 당당한 모습을 소망해본다.
25년 경력의 소믈리에이자 최정욱 와인연구소의 소장.
2015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 와인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광명동굴’과 ‘활옥동굴’의 소믈리에로서 전국의 한국 와인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레 한국 술 전반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올해 제2회 한국 술 소믈리에 경기대회를 공동 주최하며 한국 술 전문 소믈리에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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