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타트업, ‘우주 태양광 발전소’ 개발 속도
5000만 달러 유치…내년 지구 궤도 시험 가동
소형 인공위성 다수 띄워 태양광 전력 생산
레이저 형태로 바꿔 지상 곳곳 수요자에 ‘발사’
‘스타링크’와 개념 유사…오지서도 전력 수신

# “석유가 떨어져 갑니다”
북해 인근 스코틀랜드의 한 기상연구센터. 연구센터에 난방을 공급하던 발전기가 연료 부족으로 곧 멈출 것이라는 한 연구원의 말에 동료 2명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발전기는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이 불러온 영하 수십도 추위에서 자신들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을 직감한 이들은 연구센터 책장에 놓인 위스키를 꺼내 잔에 따르고는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조국과 인류, 그리고 자신들이 응원하는 축구팀의 안녕을 기원한다. 곧이어 덜덜거리던 발전기 소음이 사라진다. 미국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이다.
예기치 못한 혹한으로 지구 중위도에 사는 수많은 인류가 동사한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상상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말 이런 일이 닥친다면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투모로우> 속 연구원들과 비슷한 비극이 찾아올 공산이 크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발전기도, 연료도 없는 곳에서 난방 기구를 돌리고 전등을 켤 수 있는 방법이 곧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달 초 미국 스타트업 애더플럭스는 지구 궤도를 도는 다수 인공위성이 만든 전력을 지상 곳곳에서 전달 받아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애더플럭스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투자회사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 등이 이 기술에 총 5000만 달러(약 7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더플럭스는 “위성을 지구 궤도에 실제로 띄우는 시험 일정은 내년으로 잡았다”고 했다.
애더플럭스가 구상하는 기술의 개념은 ‘우주 태양광 발전소’다. 우선 태양 전지판을 장착한 위성을 지구 궤도에 여러 기 띄워 전력을 만든다. 만든 전력을 레이저 형태로 바꿔 지상 수요자에게 무선으로 보낸다. 당연히 전깃줄은 필요 없다. 수요자가 전력 수신기만 갖추면 된다.
우주 태양광 발전소는 이미 50여년 전부터 과학계에서 꽤 구체적인 논의가 이어져 왔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대기권 밖에서 전력을 만들기 때문에 지구의 재생에너지 발전처럼 날씨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력발전처럼 온실가스를 뿜지도, 원자력발전처럼 독성 폐기물을 내놓지도 않는다.

지구 포위하듯 다수 띄울 계획
기존에 미국과 중국, 유럽의 대학·정부기관 주도로 구상됐던 우주 태양광 발전소는 정지 궤도 위성 형태였다. 정지 궤도 위성 특징은 비행 고도가 약 3만6000㎞라는 점이다. 이 고도에서는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24시간이 걸린다. 지구 자전 속도와 같다. 지상에서 보면 항상 우주의 한 자리에 붙박이처럼 고정돼 있다. 특정 국가나 도시에 전력을 집중 공급하기 딱 좋다. 이 때문에 굳이 여러 기를 운영할 필요도 없다. 1~2기, 많아도 한 자릿수 이하면 충분하다.
애더플럭스의 우주 태양광 발전소는 다르다. 정지 궤도 위성이 아니라 지구 저궤도 위성 형태다. 고도 수백㎞에 떠 있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내외가 걸린다. 이런 저궤도 위성을 수백~수천기 띄워 전 세계 상공을 포위하려는 것이 애더플럭스 생각이다.
애더플럭스는 고객에게 “전기 보내 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으면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우주 태양광 발전소에서 전력을 레이저로 바꿔 즉각 쏴주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위성이 지구를 둘러쌀 정도로 많은 만큼 고객이 세계 어디에 있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전 인류를 소비자로 삼는 ‘전력 자동판매기’인 셈이다. 밀림이나 사막, 바다는 물론 전력망이 망가진 재난 지역에도 전력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다.
애더플럭스의 우주 태양광 발전소는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운영 중인 ‘스타링크’와 개념이 유사하다. 스타링크는 지구상 어디에나 인터넷 서비스를, 애더플럭스 우주 태양광 발전소는 전력을 공급한다.
애더플럭스는 공식 자료를 통해 “미국 국방부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지원하는 데에도 이 기술이 쓰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상 전력망이 구축돼 있지 않은 오지에서 작전하는 미군에 전자 장비를 돌릴 전력을 간편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외딴 작전 지역에서 전력을 쓰려면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석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석유는 후방에서 전선까지 차량을 통해 주로 보급된다. 차량은 이동 중 적 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미군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력을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새 방법을 애더플럭스가 내놓은 것이다.
애더플럭스는 “미국이 현 시점에서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우주 태양광 발전의 리더십을 다른 나라에 내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