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손모(49) 사장은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철판 등을 가공해 만든 산업 기자재를 대기업에 납품하는데 새해 들어 주문량이 반 토막 나서다. 직원들 월급 걱정에 은행서 3억원을 빌릴 계획도 기준금리 ‘동결’ 소식에 뒤로 미뤘다.
손 사장은 “지난해 내수 부진에 이어 새해도 고금리ㆍ고물가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며 “다들 빚내서 버티는 데 (주변에서) 대출이 연체되고 부도 직전까진 몰린 업체가 늘어나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개인사업자(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의 은행권 신용대출 최고금리는 연 6%대다. 17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의 지난달 중소기업 신용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평균 연 5.16~6.26%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전달보다 최대 0.12%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의 신용대출 최고 금리(평균)는 연 6.27%에서 6.4%로 올랐다.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6등급 이하)엔 대출 금리가 연 13%를 넘는 은행도 있었다.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은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로 동결한 데다 은행권이 중소기업 신용위험(리스크)에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이 203곳 금융사 여신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예상한 올해 1분기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지수는 39로 나타났다. 2022년 4분기(39) 이후 가장 높다. 이 지수는 높을수록 대출 부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업황 부진과 자금 사정 악화가 누적되자 은행권은 중소기업 대상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새해 영업을 위해 대출 빗장을 푼 가계대출과 비교가 된다. 새해 신규 공급처를 확보하는 등 경영에 필요한 운전자금 대출이 급한 중소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소기업 신용리스크가 커진 것은 상환 능력이 나빠지면서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2022년 10월 0.3%에서 지난해 10월 0.7%로 두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 연체율은 0.22%에서 0.65%로 뛰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소기업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사업자(자영업자)가 ‘빚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개인사업자대출은 물론 개인 자격으로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을 끌어다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337만 명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1125조3151억원(개인사업자대출+가계대출)이다. 2023년 말보다 2조2563억원 불어났다. 부실 징후도 짙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소득ㆍ저신용 다중채무자의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1.55%로 2013년 9월 말(12.02%) 이후 최고다. 특히 여러 금융사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대출 하나를 갚지 못하면 연쇄 부도를 낼 위험이 높다.
전문가들은 위기에 내몰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부실 단계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파산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면서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은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고, 회생이 어려운 한계기업은 폐업이나 재취업 등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서민ㆍ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과 채무조정 등을 포함한 ‘서민금융 종합 지원방안’을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해 올해 ‘저리 대출(금융중개지원대출)’ 지원 규모를 9조원에서 14조원으로 확대한다. 해당 대출은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해 기준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시중은행에 지원하는 자금이다. 한국은행은 900억원가량 이자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