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와이너리] 타스만 vs 무쏘EV, 픽업트럭 디자인의 '힘' 대결

2025-02-18

[비즈한국] 큰 차체로 인해 넉넉한 공간이 있어야 제대로 운용 가능한 픽업트럭은 한동안 국내 자동차 시장의 비인기 카테고리로 꼽혔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신형 픽업트럭의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최근 브랜드 최초의 정통 픽업트럭인 타스만을 공개함으로써 KGM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국내 픽업트럭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KGM 역시 신모델 무쏘 EV를 선보여 이에 대응할 예정이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로 구동계가 다른 두 모델은 정확한 맞수라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목표 수요층이 겹쳐 라이벌로 지목되고 있다.

픽업트럭이란 장르는 외형에서 힘과 실용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아 타스만의 디자인은 ‘절제’에서 해법을 찾은 듯하다. 외형을 단순한 육면체에 가깝게 부풀리고 수직・수평・사선만으로 구성하여 지나칠 만큼 절제되어 있다. 보닛부터 적재함에 이르기까지, 마치 노트북이나 휴대폰 같은 전자기기를 확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극단적인 규격화를 이루었다. 이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스타일이지만 적어도 힘의 강조라는 면에서는 명료한 마무리다. 이런 단순함은 군용차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아차가 중동・아프리카 지역 방산전시회 IDEX 2025에 출품한 군용 콘셉트의 타스만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에 비해 무쏘 EV는 특별한 콘셉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비례는 무난하지만 이것저것 섞어 놓아 눈에 바로 띄지 않는다.

무쏘라는 이름은 KGM의 전신 쌍용자동차 시절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93년 데뷔한 오리지널 무쏘는 쌍용자동차가 만든 사실상의 첫 독자개발 모델이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90년대 초 현대정공이 내놓은 갤로퍼(1991)가 비슷한 크기의 4륜구동 스테이션 왜건인 코란도 훼미리의 수요를 잠식하면서 위기를 맞이했고, 기술제휴로 얻은 벤츠 엔진에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링을 얹은 무쏘를 내놓으면서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 영국 RCA의 켄 그린리 교수팀이 참여하여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유럽 색채가 가미된 디자인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호평 일색이다.

무쏘 EV는 2002년 스포츠 유틸리티 트럭이란 개념으로 선보여 픽업트럭의 씨앗을 뿌렸던 무쏘 스포츠의 정신적 후속작이기도 하다. 이름만 가져오기보다 오리지널 무쏘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통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오리지널 무쏘는 삼각형으로 날카롭게 빠지는 방향지시등, 중앙이 돌출된 보닛 패널, 중간에 계단처럼 턱을 만들어 역동적으로 연결한 측면 윈도우, 수직이 아니라 홑화살괄호( 〉) 형태로 떨어지는 테일 게이트 등등 재해석 가능한 요소가 적지 않다. 해외에도 폴크스바겐 골프가 1세대부터 유지하고 있는 꺾인 C필러나 BMW 차량 측면 윈도우에 적용된 호프마이스터 킨크처럼 세대가 달라져도 작은 부분에서 헤리티지를 유지하는 사례가 많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다. 쌍용차의 전유물이었던 4륜구동차 카테고리에 갤로퍼가 파동을 일으킨 것처럼, 현재 KGM을 지탱하는 카테고리인 픽업트럭에 타스만이 도전장을 냈다. 무쏘 EV가 이에 맞서려면 더욱 임팩트 강한 디자인이 필요해 보인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90년대 쌍용차를 돋보이게 한 것은 디자인이다. 앞서 현대 그랜저 GN7이 1986년 데뷔한 1세대의 각진 디자인을 재해석해 좋은 평가를 얻은 것처럼 과거의 우수한 유산을 계승한 디자인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 ​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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