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변하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2025-03-13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2018년 자신의 저서 '초격차'에서 변화와 혁신의 당위성을 애벌레론으로 설파했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번데기로, 번데기가 나비로 변신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잎사귀만 갉아먹으며 변신을 거부하는 애벌레는 '피둥피둥' 살이 쪄 하늘을 나는 새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어 잡아먹힐 것이다. 즉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갑자기 애벌레를 떠올린 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상황이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도 살피지 못하는 거대한 애벌레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부터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판결을 앞두고 정치는 양 극단으로 나뉘어 서로 헐뜯기에만 여념이 없다. 탄핵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든 자칫 심각한 소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다. 헌정사상 세번째인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지만, 이번처럼 두렵고 불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두려움은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든 승복하는 것이다. 피청구인부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가장 고귀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신념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신념을 고집하는 리더가 더 나쁘다. 흡사 잘못된 길에 들어섰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리더의 자세다.

현 헌법 체계도 살 찐 애벌레다. 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권위주의 정권의 알을 깨고 나온 87 헌법은 38년 간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잉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대한민국 정치가 거대한 애벌레가 된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분출하고 있는 개헌 논의에 정치가 답해야 한다. 헌법을 공부하고, 필사까지 하며 염원하는 국민을 또 외면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경제·산업 체질도 바꿔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데이터, 바이오,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성공 방식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제조업 기반을 AI와 데이터를 접목해 변신시켜야 한다. 디지털과 AI 기반 산업 전환을 늦추면 제조업 강국이라는 지위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기업은 과감하게 변화하고, 정부는 뒷받침하자. 지금 눈치 보고 있을 틈이 어디 있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판결은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을 알리는 신호탄이 돼야 한다. 방향은 명확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제 개혁과 정치 시스템 변화를 통해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자. 또 AI 전환과 디지털·신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혁신하자. 그리고 정치·경제·사회 변화의 중심에 진영 논리가 아닌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를 놓자.

더 이상 익숙한 것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경쟁국을 압도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은 언젠가 반드시 잡아먹히거나 무너질 것이다.

양종석 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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