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⑵ 준비로도 막을 수 없는 것

2025-06-07

PCT(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태평양 연안을 따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4300㎞나 이어진 장대한 길이다. 1년에 8000명 정도가 도전하지만 약 20%만이 성공하고, 일부 도전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보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고행의 길을 <농민신문> 자매지 월간 <전원생활>에 몸담았던 신시내 기자가 도전에 나섰다. 신기자의 PCT 무사 완보를 응원하며, <농민신문>이 그의 종단기를 독점 연재한다.

‘지잉지잉’ 맞춰둔 알람이 울리는 시간, 새벽 4시. 아직 주변이 깜깜하지만,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 현재 위치는 멕시코 국경으로부터 약 320km 떨어진 지점. 며칠간 이어졌던 고도 2000m대의 하신토 산(Mt. Jasinto)을 내려가 사막지대를 건너야 하는 코스다 보니 평소보다 출발 시간을 1시간 당겼다. 전날 확인한 대로 오늘은 1500m나 고도를 한꺼번에 낮춰야 할 뿐만 아니라 도중에 물을 보급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해 이곳에서 물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했다.

날씨도 문제였다. 종주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기온이 30℃ 이상으로 오르는 날이라 오전 9시부터 걸음마다 땀이 흘러내렸다. 새벽 5시에 출발해 17km를 걸은 끝에 낮 12시가 돼서야 물 보급지에 겨우 도착했다. 그곳 역시 그늘이 없어 부지런히 물만 담고 걸음을 서두른다.

배낭에 3.5ℓ의 물이 더해지자 걷는 걸음이 훨씬 묵직해진다. 사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훨씬 날이 덥고 짐도 무거워 부담이 더했다. 평소라면 이색적인 주변 경치를 보며 탄성을 질렀을 테지만, 그런 여유는 사치였다. 눈앞에는 보이지도 않는 오늘의 야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도 벅찼다. 잠시 숨을 돌리고 싶어도 고작 내 발목까지 오는 관목이 전부.

하이킹용 우산 하나에 의지해 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나보다 앞서 걷던 남편도 어깨가 축 늘어져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폭설과 강우 같은 악천후 속 산행도 경험한 우리지만, 이런 날씨와 환경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다고 자부하며 큰 어려움 없이 3주를 보냈지만, 어떤 준비로도 대비할 수 없었던 자연과 처음으로 마주하며 무력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그렇게 6km를 두 시간에 걸쳐 걸었을까. 한 줄기 빛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이커들 사이에서 ‘I-10오아시스’라 불리는 터널 쉼터였다. I-10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가는 길목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곳인데, 작지만 쉴 수 있는 의자와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구비되어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터널 그늘에 한 걸음 내딛자마자, ‘살았다!’라는 탄성과 ‘이곳에 물이 있는 줄 알았다면 조금 덜 지고 왔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연달아 따라왔다. 그래도 두 사람이 함께 무사히 그늘에 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조금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자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고마움이 샘솟았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남았지만, 한 번 숨을 돌리고 나니 비교적 발걸음에 힘이 들어갔다.

돌아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이번 여행은 그랬다. 5월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에 마을에서 예상치 못하게 이틀이나 더 머물렀던 때나, 재 보급지에서 강한 비를 맞으며 손빨래와 야외 샤워를 강행했던 때도 있었다. 그 어느것도 여행 전 생각지 못한 사건들이었다. 지금은 ‘아~그랬지’하며 웃음으로 그날을 떠올린다. 그렇게 우리는 길을 걸으며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시내 기자 si-na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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