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도 ‘텅텅’… “코로나 때가 나았다”

2025-03-31

불황에 자영업 폐업 속출

강남 상가 건물 곳곳 ‘전층 임대’

2024년 4분기 공실률 4년전比 1%↑

“매출 반토막… 강남 불패는 옛말”

주방용품 판매·간판업계도 곡소리

전문가 “업종별 맞춤형 대책 절실”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초입에 들어서자 4층짜리 텅 빈 상가 건물의 외벽에 ‘전층 임대’라고 적힌 빨간 현수막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바로 옆 6층 건물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꼭대기인 6층을 제외한 전층이 모두 공실이었다. 원래 약국인 1층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광고지를 붙인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았다. 가로수길 초입부터 700m가량 거리에서 확인된 1층 공실만 30곳이었다.

인근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60대 구모씨는 “32년간 이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렇게 빈 건물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강남은 괜찮다’는 말이 무색한 지 오래다.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주변 식당들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줄폐업을 거듭하며 상가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간판업·철거업·중고 주방용품 업체 등 경기불황 속에서 호황을 맞는다는 ‘불황특수 소상공업’마저 혹독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자영업자 수는 550만명으로, 지난해 11월(570만여명)과 비교해 20만명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엔데믹을 앞둔 2023년 1월 집계된 549만명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대규모 줄폐업과 함께 빈 상가는 계속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국 소규모 상가(2층 이하, 330㎡ 이하)의 공실률은 6.53%였으나, 4분기에 6.74%로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 1분기(5.6%)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임대료가 비교적 더 비싼 중대형 상가의 전국 공실률은 3분기 12.73%에서 4분기 13.03%로 올랐다.

폐업과 창업의 순환 구조가 아닌, 빈 상가들이 새주인도 찾지 못하는 탓에 관련 업종도 불황의 늪에 빠졌다. 새로 개업하는 가게들이 주 고객인 간판 업계에서는 “차라리 코로나 때가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남에서 35년간 간판업체를 운영하던 최문철(67)씨도 1월에 사업을 접었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평균 매출이 80∼90% 줄었다. 손실 규모가 엄청나다”면서 “1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지금은 사업자등록증만 살았을 뿐이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아무도 가게를 새로 열지 않는 상황에서 간판업은 다 굶어 죽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중고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도 한산하기만 하다.

이날 주방거리는 은색 싱크대와 냉장고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방문객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만 거리를 채웠다. 한 점포에서 근무하는 A씨도 노란 고무장갑을 낀 채 1주일 넘게 진열된 싱크대를 닦았다. 그는 “팔리지 않아서 닦을 이유도 없는데, 오랜만에 그냥 닦고 있다”며 “손님들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고 했다. 중고 주방기구 매입업체 사장 김모씨는 “주방거리에서 내가 아는 가게만 3곳이 문 닫았고, 작년까지 합치면 10곳은 될 것”이라면서 “중고시장은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는 회전이 중요한데, 지금은 계속 쌓이기만 하고 나가질 않는다”고 했다.

철거업계의 어려움도 크다.

가로수길에서 만난 철거업체 사장 정모(55)씨는 “작년보다 매출이 40% 줄었다”며 “이제는 폐업해도 철거를 안 한다. 돈이 없으니 그대로 방치하거나 보증금 포기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500만명이 넘는 자영업자 중 특히 어려운 업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이 절실하다”며 “그 이후에 맞춤형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한서·변세현·정세진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