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설 록밴드 ‘비치보이스’ 브라이언 윌슨 82세로 별세

2025-06-12

1960년대 영국의 비틀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한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브라이언 윌슨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윌슨의 가족은 이날 공식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윌슨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윌슨은 생전 치매를 앓고 있었고 지난해 아내 멀린다가 사망한 이후로 건강 상태가 더욱 나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5월부터는 가족의 요청에 따라 법정 후견인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윌슨은 196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다. ‘서핀 유에스에이’(Surfin USA), ‘서퍼 걸’(Surfer Girl), ‘코코모’(Kokomo) 등의 히트곡을 통해 한국에서도 알려져 있다.

윌슨은 서핑과 자동차 등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청춘 문화를 음악에 녹여낸 ‘서프 뮤직’ 장르를 개척하며 대중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1961년 윌슨을 중심으로 그의 남동생 칼과 데니스, 사촌인 마이크 러브와 친구 알 자르딘 등이 뭉친 밴드 비치보이스는 첫 싱글인 ‘서핀’(Surfin)부터 대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100여 곡 이상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록 역사상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총 30곡 이상을 미국 빌보드 차트 40위권 안에 진입시키며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윌슨은 비치보이스의 음악적 중심으로서 대부분의 히트곡을 작곡하며 밴드의 성공을 이끌었다. 비치보이스가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는 영국 밴드 비틀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이기도 했다.

비치보이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로서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맞서며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두 밴드는 서로 음악에 영향을 주며 선의의 경쟁을 이어갔다.

비틀스를 이끌던 폴 매카트니는 윌슨이 1966년 발표한 앨범 ‘펫 사운즈’(Pet Sounds)에 감명을 받아 비틀스의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 바 있다. 비치보이스 역시 1965년 앨범에서 비틀스의 노래 3곡을 커버하는 등 음악적으로 교류했다.

그러나 윌슨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66년 밴드의 전성기 시절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 그는 투어 활동에서 이탈하고 스튜디오 작업에만 집중하게 됐다.

이 시기 발표한 ‘펫 사운즈’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앨범 500’ 중 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1988년 비치보이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윌슨은 이후 약물과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환청을 동반한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받을 만큼 그의 정신 건강은 나빠졌고, 침대에 누워 며칠째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따금 음악 활동을 이어가긴 했으나 계속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며 초창기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윌슨의 별세 소식에 음악계의 애도도 잇따랐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 시나트라는 인스타그램에 윌슨과 함께한 사진을 올리며 “그의 소중한 음악은 그가 우주를 넘어 여행하는 동안 평생 살아남을 것”이라고 적었다.

존 레논의 아들이자 뮤지션인 션 오노 레논도 “윌슨은 ‘미국의 모차르트’이자 유일무이한 천재였다”며 “그의 죽음은 나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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