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석 씨의 아침은 느긋하다. 학교 급식실에서 반찬을 만드는 부인의 짧은 출근인사에 건성으로 대답한다. 평생 먹어야 한다는 약을 목으로 삼키며 미적미적 자리보전 중이다. TV를 켜도 집중이 어렵고, 신문은 끊은 지 오래, 전화기 안 세상에만 빠져든다. 좋다는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온통 싸우며 헐뜯는 이야기뿐이라 가슴은 답답하다. 제목과 동떨어진 기사를 보면 치사한 밥벌이라 생각 들며, 안타까움에 혀만 차진다.
차려진 밥상 속 허기만 채우면 그만이고, 늘어나는 뱃살을 걱정해야 한다. 운동은 계획에는 있어도 실천을 못 하고 있어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다. 요즘엔 노인 냄새난다는 말이 가장 무서워 씻는 데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동네 목욕탕의 단골이 됐다. 해가 중천에 떠야 대문을 나서지만 딱히 오라는 데도, 갈 데도 마땅치 않다. 버스를 타도 구경거리가 있지만, 지하철은 무료이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찰구를 통과할 때면 공연히 남의 눈치가 보이지만 이는 익숙한 과정.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지하철 안은 낮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비어 있는 곳은 경로석뿐이라, 눈길은 가지만 그래도 되나 싶어 잠시 갈등이 된다. 누군가가 일어서기를 은근히 바라지만, 다들 요지부동 무관심으로 딴청만 피운다. 관상을 보니 출세하기는 애저녁에 틀린 듯 하다. 괜히 남의 집 자식에게 미움이 생겨 트집을 잡으며 혹을 붙였다 뗐다 하다 욕으로 끝났다.
변함없이 이 거리를 도착한 후 그는 일상처럼 왔던 길을 다시 간다. 때마침 심심하던 차에 저건 뭘까 싶어 구경꾼 무리에 꼈는데, 복채 천원을 받는 사주집에 이르렀다. 생년월일도 없이 이름만 듣고 미래를 예측한다니 순 엉터리였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무슨 얘기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질문도 채 나오기 전에 “글을 써보세요. 동화요.”라는 예상하지 못한 점괘는 번개를 맞은 듯 그대로 박혔다.
그는 어릴 적 별을 보면 무지개 사다리를 타고 올라 건너고 싶던 순수했던 동심을 갖고 있었다. 더이상의 빠듯한 연금 생활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를 찾아야 했다. 명예나 출세는 아니었고 손자들에게 자랑거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숨어있던 재능에 날개를 달았다.
어느덧 그의 동화책은 재미있고 감동이다라는 소문으로 갑자기 유명세 작가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서점에 깔린 동화책에 미소가 가득해졌고, 책을 선주문한 출판사의 매력적인 제안에 도장을 찍었다.
그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했다. 시간에 대한 귀함을 알았으며, 용기 있는 도전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덤으로 얻었다. 자포자기하며 내일의 나에게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까했던 게으른 허상은 지워내고,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청춘의 아름다움을 가져왔다. 더불어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공기, 물, 태양의 존재함에 감사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