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전대미문(前代未聞). 과거에 들어본 일이 없어 선례를 참고할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국내 자본시장의 최근 사례가 바로 그렇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코스피·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을 넘기고, 수많은 코인 중 하나일 뿐인 리플의 거래대금이 삼성전자 거래대금의 2배 수준까지 치솟은 순간 과거의 지혜에 기대서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불모지(不毛地). 너무 척박해서 풀이 자랄 수 없는 땅을 말한다. 국내 주식시장은 점점 혁신의 불모지가 돼간다. 일반 투자자들은 더 이상 국내 주식시장에 대해 화조차 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내 주식시장에서 진작에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게 국장(한국 주식시장)을 왜 했냐"는 핀잔이나 들을 뿐이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살벌한 농담이 시장을 떠돈다.
지난 21일 기준 NH투자증권이 국내 주식(코스피200) 보유자 207만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57%가 50대 이상이며 30대는 13%, 40대는 26%였다. 2030 세대는 다 해봐야 17%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젊다고 다 혁신가는 아닐 것이다. 허나 새로운 세대가 국장을 외면하는 건 이미 상식이요,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이 돼버렸다. 선택권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해서 떠나는 중이다.
최근엔 시니어 세대들도 가상자산(코인)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비트코인을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 이제야 시장에 진입한 이들은 소위 MZ세대보다 행동은 느릴지 몰라도 돈은 더 많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내 1·2위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의 60대 이상 고객 계좌 수는 77만5718개, 이들의 가상자산 보유액은 총 6조7609억원이었다. 60대 이상 투자자의 1인당 평균 투자액은 20대 이하의 9배, 30대의 3배 수준이다.
미국주식 투자를 일종의 트렌드로 만드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한 토스증권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296억원)이 전년 동기(36억원)의 8배 이상 폭증했다. 당기순이익은 324억원으로 전년 동기(35억원) 10배 가까이 늘었다. 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지금은 국내 자본시장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코스피·코스닥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전쟁을 한 것도, 금융위기를 맞은 것도 아닌데 차트는 아래로 아래로만 꺾여나가는 1년이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국장에서 일어난 폭락세에는 누가 봐도 분명 지나친 면이 있었으므로 그래프는 머지 않아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것이다. 바로 이 반등의 불씨가 살아난 상태에서 하는 선택이 중요하다.
상법 개정이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사태가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이어지는 상법개정안 논란은 상법 제382조 '이사의 충실의무'의 문구수정 논란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켜서 소액주주를 등한시하는 현재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은데, 상법개정을 할 경우 비상장 중소기업까지 전부 포함하게 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도 분명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분명한 건 이 전대미문의 시장 상황이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을 허락해주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