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7일.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서 쿤밍남역(昆明南站)으로 향하는 차량을 잡아탔다. 중국의 차량 공유앱인 디디추싱으로 부른 승용차였다. “시이빠치?” “하오” 호출 전화번호 뒷자리를 확인하자, 차량이 출발했다. 6차선 도로에 올라타자 막힘이 없었다. 쭉 뻗은 도로 위로 BYD, 지리, BAIC(베이징자동차) 같은 다른 중국산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중국 윈난성(云南省) 쿤밍(昆明市)은 연중 온후한 기후로 꽃과 봄의 도시로 유명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야치’라는 지명으로 언급된 곳이다. 마르코 폴로는 이 곳을 “밀과 쌀이 풍족하고 쌀로 빚은 음료수가 훌륭하다”(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김호동 역주)라고 했다.
지리적으로는 중국 서남부에 돌출해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등을 접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이곳을 시진핑 시대의 지정학 전략인 일대일로(一带一路)의 최전선으로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개발했다. 이날 쿤밍남역을 찾은 이유도 라오스 비엔티안역을 종착지로 하는 라오스-중국 철도(총 1035㎞)의 시작지점을 스케치하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사실 쿤밍남역을 굳이 찾은 건 전날 쿤밍에서 열린 일대일로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중국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힘’을 얘기 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미얀마 지진 때 가장 먼저 구조대를 보낸 일, 태양광을 설치해 동남아 약소국 산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일 같은 ‘작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문명의 교류”, “상호 연대”를 말했다. 왕광(王广)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은 “작은 이야기로 큰 시대를 증언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쿤밍남역을 스케치해서 중국 정부 당국자들의 공개 발언에 대한 회의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얘기하더라도, ‘하드 파워’에 기반한 힘의 외교가 본체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게 평소 생각이어서다. 그러나 일대일로를 통한 ‘주변국 수탈’의 전초기지를 스케치하려던 구상은 역 지하층의 화장실 앞서 캐리어들을 보면서 흔들렸다. 라오스를 다녀온 중국인들은 종점인 쿤밍남역에 내리는데, 이들이 화장실에 들르며 놔둔 짐이었다. 짐을 훔쳐갈까봐 걱정할 필요 없이 안심하고 두고 다닌다는 얘기였다.

그제야 이틀 전 중국 쿤밍에 도착한 뒤부터 느끼던 위화감 정체를 깨달았다. 10여 년 전 들렀던 중국에선 횡단보도건 신호등이건 다 무시하고 차들이 질주했다. 거리를 건너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의 중국은 달라졌다. 횡단보도를 어린이가 건너니 차량이 좌회전을 하다가도 멈추고 기다린다. 카페에 들러 가방을 두고 자리를 잡은 다음 카운터에 가는 동안 도난을 걱정하자, 동행한 일행이 웃으며 타박했다. “훔쳐가는 그런 일도 이젠 옛말이에요.” 도로를 점령한 중국산 자동차, 세계 일류 수준의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반도체 산업에 대한 하드웨어적 완비를 넘어 중국의 소프트웨어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이 막연히 ‘중국’이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는 게 위화감의 정체였다.
차량 품질 높이려 솔선하는 근로자

“차 만드는데 휴대전화를 왜 보나요?”
앳된 중국인 근로자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하고는 바로 자기 일로 넘어갔다. 바쁜 손놀림을 보니, 한국인 기자가 더 캐묻기가 어려웠다. 23일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 구이양(贵阳市)의 지리자동차(吉利汽车) 공장을 찾을 때부터는 중국인의 소프트웨어 변화를 작심하고 관찰했다. 이곳 공장에선 근로자들이 로봇과 협업해 자동차 조립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 750대의 차량이 생산된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며 자동차를 조립해 근로자들의 노동윤리가 문제됐던 게 떠올랐다.
펑씨라고 밝힌 한 9년차 직원은 “출근하면 자발적으로 휴대전화를 수거해 회사에 반납한다”면서 “자칫 차량에 흠집을 낼 수도 있고,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작업 중엔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만든 지리차가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공장 곳곳엔 “품질을 타협하지 말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분주한 근로자들 사이로 로봇 차량이 자동으로 운행하며 부품을 나르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선진적 의식은 공안(한국의 경찰)과 CCTV로 강제된 것이고, 근면함 역시 노동자의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라고 반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통치력을 보이는 개발 독재국가에서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더구나 인명을 경시하는 권위적 시각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윈난성의 중국남방전력망이 운영하는 전력공장에서는 이런 가설도 무너졌다.
인명 중시와 안전으로 이동한 사회 패러다임
윈난성 중국남방전력망의 공장에선 전력망을 제어하는데, 공정의 상당 부분이 로봇을 통해 자동화된 상태다. 로봇이 스스로 다니면서 부품을 갈아 끼웠다. 첨단과 효율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은 모양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공장 관계자에게 물었다.

“로봇 한 대가 몇 명의 인력을 대체 하나요?”
“로봇 3대가 7명 몫을 합니다. 사실, 효율로 따지만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에요. 효율 보단 사람의 안전 때문에 로봇으로 대체한 겁니다.”
인력으로 위험한 전력 작업을 하다 보니, 이따금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이게 사회적 문제가 돼 로봇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속도와 물량전의 중국은 끝나고, 사회의 중심추가 안전과 인명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중국인의 소프트웨어가 달라진 거 같아요.” 기자의 감상을 통역을 맡은 20대 중국인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AI와 로봇공학, 반도체 등 하드웨어 분야에선 한국이 추격자 신세로 전락했더라도 시민 의식면에서는 아직 한국이 월등하게 높을 거란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요. 우리는 부모님 세대와 달라요.” 자부심이 베어든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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