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에게 이직을 허하라

2025-01-12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코가 아파요. 지금도 코가 많이 아파요.”

작년 10월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한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발언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독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재채기가 계속 나고, 콧물이 흐르고 심할 때는 코피까지 섞여 나와요. 약을 먹어야 견딜 수 있어요. 알레르기 비염으로 진단받았고 의사가 코가 많이 부었다고 수술하래요. 진단서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이직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안 된다’라고 했어요. ‘수술하고 2~3개월 요양한 후에 다시 출근하라’고 했어요. 할 수 없이 고용센터에 진정했더니 담당자는 보자마자 회사와 똑같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고용센터 외국인 담당자를 고발합니다. 제가 아픈 걸 무시하고 사업주의 말만 들어요. 진정서를 받고 바로 ‘사업장변경이 안 되는 거 알고 있죠?’라고 했어요.”

질병·폭행 등 못견딜 정도여도

문제 입증 책임 이주노동자에

중소기업 좋아지면 한국에 득

수술해도 다시 같은 곳에서 근무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의 말에도 고용센터의 담당자는 수술하고 재발하면 그때 보내주겠다고 한다. 아무리 외쳐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는 이 노동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제가 무슨 실험용 동물인가요? 제발 외국인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 사업주는 사직서를 받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계속 일하거나 출국하거나 불법체류를 하거나 3가지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오기까지 큰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심지어 운까지 따라줘야 비로소 한국에 올 수 있다. 당장 본국에 있는 가족 부양책임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이 되는 길을 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자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라는 고시를 통해 사업주의 폭행, 임금체불, 기타 근로조건을 위반한 경우 등에는 사업주의 동의가 없어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혼자서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폭행을 당해도 사업주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사업주가 자신을 폭행했다는 분명한 영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인가? 맞으면서 영상을 찍는 것이 가능한가? 많은 경우 폭행을 당해도 영상이 없어 신고를 포기한다.

직장에서 반드시 부당한 처우가 없더라도, 들어가기 전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적성에 맞지 않거나 본인의 건강 상태와 맞지 않거나 또는 상사나 동료와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다. 한국에 오기 전 본국에서 회사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는 막상 와보면 계약서에 있는 정보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업주는 늘 하는 말이 있다. ‘3년 계약했으면 계약대로 일해야 한다. 싫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사람의 당연한 권리인 직업 선택의 자유는 이주 노동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직에 동의해주는 조건으로 수백만 원을 노동자로부터 받아 내기도 한다. 세상에 어떤 노동자가 직장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돈을 지불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사업주는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얼마든지 이주노동자를 저렴한 가격에 묶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다면 사업주는 보다 공정하게 이주노동자를 대하게 될 것이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좋은 환경의 사업장이 되면 내국인의 취업이 가능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왜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취업할 곳이 없는데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물건부터 사는 집까지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이주노동자는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사람으로서, 동등한 노동자로서 대우하는 그런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새해가 되었어도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슬프다. 아파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는 참 슬프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이 되면서 외국인 인력을 더 많이 데려오고 업종도 계속 확장되었지만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계속되고 있고 이주노동자의 슬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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