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 전북도민 염원에 응답할 시간이다

2025-04-23

결국, 제자리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식 의대정원 증원은 채 아물지 않은 깊은 상흔만을 남긴 채, 실패로 귀결됐다. 대책은 손바닥 뒤집듯 번복됐고, 대화와 협의는 실종됐으며, 원칙은 무너졌다.

정부는 목적지는 알았지만, 그곳에 다다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살리겠다던 공공·필수·지역의료는 오히려 송두리째 무너졌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취약한 의료체계의 민낯 앞에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불안과 염려는 국민의 몫으로 남았다.

이제 갈등의 늪에서 나와, 다시 미래로 향해야 할 시간이다. 제대로 ‘진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확한 ‘처방’ 이다. 의료개혁의 첫 단추를 다시 꿰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방이 직면한 처참한 현실과 마주하면, 과연 우리의 의료체계는 선진국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으로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해, 언제라도 집단 사직 등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 자원과 인력 편중이 심각하고, 특히 응급, 심뇌혈관 질환, 고위험 분만 등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의 지역 내 자체 충족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때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언제까지 주저앉아 서글픔만을 삼킬 수는 없다. 필요한 곳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의대정원 증원의 최우선 목적은 공공·필수·지역의료의 확충이 되어야 한다. 아프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보편적 공공보건의료의 요람, 그 최전선이 공공의대의 역할이다. 공공의대를 통해 배출되는 의료인은 지역별 격차를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을 해소하는 선봉이 될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무너진 외양간에 이대로 방치한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공공·필수·지역의료가 처한 작금의 위기 앞에 또다시 비겁하게 침묵한다면, 상처는 곪고 곪아 대한민국을 치유 불가능한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2018년 서남대 폐교에 따라 당시 당·정 합의사항인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한 공공의대 설립은 기울어진 불균형을 바로잡고, 필수과목의 인력 확보, 감염병·재난대응 구축 및 의료의 공공성을 이루는 한걸음이다.

차분히 준비 해왔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복지위를 통과했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안타깝게도 목전에서 좌절됐다. 그사이 남원은 부지의 50% 이상을 매입했고, 전북은 공공의대 유치지원 특별위를 꾸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6월, ‘공공의대법’ 당론 추진을 발표했다. 70여명이 넘는 의원들이 힘을 모았다. 여야와 정쟁에 가둘 일이 아니다. 정치적 소모와 갈등을 뒤로 하고, 국민의 생명 앞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공공의대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는 일이다. 그저 학교 하나를 더 짓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계가 나아갈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물꼬를 트는 일이다.

개혁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시대적 책무를 받들고, 남원시민뿐 아니라 전북특별자치도민과 지리산권역 의료취약지역 주민의 염원을 이뤄야 한다. 이제, 국회가 180만 전북도민의 염원에 응답할 시간이다.

박희승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남원장수임실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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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 염원 #공공보건의료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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