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파킨슨병이었다” 척추 명의도 놓친 전조 증상

2025-04-24

시작은 사소한 증상이었습니다.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박춘근(73) 명예교수는 어깨 통증이 오자 오십견이라고 여겼죠. 나이가 들며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관절 주사를 맞아도 통증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경과로 옮긴 그는 2010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당시 나이 58세. 수술실에 누워서 들어간 환자를 걸어서 나오게 한 기적의 ‘척추 명의’로 불렸던 그에게 파킨슨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손을 떨며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없으니까요. 벼랑 끝에서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죠.

파킨슨병은 도파민계 신경이 파괴되면서 움직임에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을 말합니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거나 척추가 휘고 움직임이 느려져 걷거나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이죠. 척추 명의에게 척추가 아픈 병이 찾아오다니. 박 교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환자로 받아들이기까지 13년. “파킨슨병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환한 미소로 답했습니다. “만약 파킨슨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치료에 탁월한 명의는 될 수 있어도 환자의 진짜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의사는 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병으로 인해 지금 저는 누구보다 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진정한 의사가 된 셈이죠.”

박 교수는 “파킨슨병이 시작되기 전 작은 시그널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친 건 이런 신호를 무시했던 본인의 아집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같은 실수를 겪지 않도록, 자신의 투병 일지를 모아 『신경외과 전문의 파킨슨병 실제 투병기』(바이북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놓쳤던 작은 신호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긴 어둠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든 건 또 무엇이었을까요. 한 의사의 솔직한 고백을 들어봤습니다.

✅ 척추 명의, 그에게 닥친 ‘사형선고’

척추성형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며, ‘척추 명의’로 불리셨죠.

제가 국내 처음으로 척추성형술을 한 건 1998년이었어요. 이전까지 골다공증성 척추골절 환자에겐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거든요. 극심한 통증이 와도 진통제와 치료제를 먹으며 관찰하는 게 전부였죠. 근데 그해 참석한 미국 신경외과 척추학술대회에서 운명처럼 포스터 하나를 보게 됐어요. 그게 제 인생을 바꿨죠.

어떤 포스터였길래 인생을 바꾼 거죠?

치료방사선과 의사가 발표한 내용이었는데, 척추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인체용 골시멘트(척추의 모양을 복원하는 물질)를 주입했더니 통증이 현저히 줄었다는 연구 내용이었어요. 이거구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귀국하자마자 척추성형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철저한 준비 끝에 환자 9명을 수술했고, 모두 통증이 평균 85% 이상 호전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내용을 1999년 학술대회에서 보고하자 언론 헤드라인을 모두 장식했고요. ‘척추성형술’이란 명칭도 만들고, 신의료기술로 등록도 했죠. 아마 그때부터 ‘척추 명의’ 타이틀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파킨슨병은 언제 찾아온 건가요?

확진 받은 건 2010년, 당시 제 나이 58세였습니다. 60세도 안 된 젊은 나이죠. 2009년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척추인공관절학회 회장이 되기도 할 정도로 학회 활동을 활발히 하던 때였거든요. 이제 학문적으로 날개를 펼치겠구나 싶었는데…. 날개가 확 꺾인 겁니다. 손 떨림이 주 증상인 파킨슨병은 외과 의사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거든요. 수술을 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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