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도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마도 동백꽃

2025-03-0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K는 사뿐사뿐 걸어서 계산대로 가더니 명함을 석 장을 가져와서 나누어 주었다. K 교수는 예쁜 디자인의 명함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정통 이태리 음식점 파스타 밸리.

대표 K은정.

전화번호 031-xxx-xxxx.

찬찬히 명함을 들여다보던 K 교수는 갑자기 운명 같은 만남이라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봄꽃은 오래 가지 못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열흘 넘게 피어 있는 꽃은 드물다. 그것은 마치 인생에서 아름다운 청년 시절이 10년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년 시절처럼 힘이 넘치고 모든 일에 자신이 있는 질풍노도의 시간은 10년을 넘지 못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다”라는 말은 과장법이요 소망일 뿐이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따라서 늙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청춘 시절에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고 후회 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이제 연분홍 진달래꽃은 지고, 노란 개나리 꽃잎도 져 울타리 아래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새색시처럼 화사하던 목련은 커다란 꽃잎이 뚝뚝 떨어져서 목련나무 그늘에는 시들고 변색한 꽃잎이 수북하였다. 목련은 피어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떨어진 꽃잎은 지저분하고 추한 모습이다.

떨어져도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마도 동백꽃이리라. 동백꽃은 선명하게 붉은 꽃이 피어 있던 모습 그대로 통째로 떨어진다. 동백은 겨울에 피는 꽃이다. 동백이 지기 전에 운 좋게 눈이라도 내리면, 눈 위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의 처연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겨울에는 곤충이 없는데 동백꽃은 어떻게 수정할까? 동백나무 숲에는 동박새가 산다. 길이 10cm 정도로 작은 동박새는 동백나무에 둥지를 짓고 동백꽃 꿀을 먹으면서 추운 겨울에 동백꽃을 수정시킨다.

간밤에 내린 비로 목련꽃 잎이 마당을 어지럽히던 어느 봄날, 옆 연구실의 ㄷ 교수가 K 교수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지난번에 연구과제 심사 건으로 신세 진 일도 있고 해서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ㄷ 교수는 K 교수에게 ㄹ 교수와 같이 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ㄹ 교수는 K 교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ㄹ 교수는 물리학 전공인데, 물리학을 대중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몇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꽤 유명해진 교수였다.

왜 하필 ㄹ 교수를 초대할까? 두 사람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니 둘 다 강원도 원주 출신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지연이란 엄연히 살아있는 일종의 문화적인 전통이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면 왠지 말이 통하고 또 초면이라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하기야 두 사람의 고향이 같다면 함께 알고 있는 동네 이름과 거리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구 아느냐, 누구 아느냐고 두어 번만 물어보면 두 사람이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법이니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넓고도 좁은 곳이다.

지구상에는 80억(2023년 기준)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지만, 몇 사람만 거치면 이 세상의 누구와도 쉽게 연결이 된다. 어느 학자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여섯 명만 거치면 지구촌의 어떤 사람과도 연결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론을 ‘6단계 분리이론’이라고 한다. 6단계 분리라는 말은 1920년대 헝가리의 작가 카린시가 쓴 《연쇄(Chain)》라는 책에서 유래되었다. 카린시는 당시 전 세계 15억 인구 가운데 누구라도 여섯 명만 거치면 다 알 수 있을 것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를 입증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계속)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