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전쟁이라는 착시

2025-10-21

요즘 우리 사회에서 ‘영포티’ ‘이대남’ ‘MZ세대’ 같은 세대 구분은 일상적인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세대 담론은 단순히 사회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과 유럽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수의 언론은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독점했다” “밀레니얼은 게으르고 불평이 많다”는 식으로 세대 간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다. 최근 몇년간 내가 지도한 석사 논문들에서도 조직 내 세대 갈등, 젠지(Gen Z) 노동자의 조직 적응 문제, 역연령차별(reverse ageism) 등이 자주 다루어졌다.

다수의 학자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런 ‘세대 탓하기 게임’이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대 갈등은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다른 연령대’로 투사하게 만들고 각 세대 내부의 다양성과 격차를 가린다. 특히 최근 연구들은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부의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 안에서도 계급·성별·지역에 따라 삶의 조건이 크게 다르고, 노년 세대 내부에서도 부와 빈곤의 격차가 극심하다. 따라서 세대 전체를 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통계보다 선입견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또한 세대 간 대립 구도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가리고 정치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집값 폭등, 고용 불안, 돌봄 위기 같은 문제는 세대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실패와 제도적 불평등의 결과다. 영국에서도 유사한 ‘세대 전쟁’ 담론이 오랫동안 언론과 정치에서 활용돼왔다. 이런 담론은 경제 정책의 실패나 복지 축소 같은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그 책임을 노년층에게 돌리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학자들은 이를 “조작된 세대 전쟁” 혹은 “가짜 세대 정치”라 부른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최근 이러한 세대 갈등 담론에 대응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까지 ‘세대 간 공정성’ 전략을 마련하고, 각국의 세대 간 평등을 측정할 ‘공정성 지수’를 개발 중이다. 이는 세대 간 대립이 아니라 연대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주거·기후·교육·복지 등 영역별로 세대 간 공정성을 평가하고 개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지수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EU 집행위원 글렌 미칼레프는 지수 개발과 더불어 세대 간 공정성 시민 패널을 출범시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EU의 미래 전략 수립 과정에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세대를 갈라놓기보다, 공동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유럽 사회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도 이러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불안정한 구조 속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청년은 기회의 부족을, 중년은 과중한 책임을, 노년은 돌봄의 불안을 견디고 있다. 이는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깊이 연결된 구조적 현실이다. 세대를 탓하기보다 세대를 잇는 연대를 상상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구조적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다. EU가 세대 공정성을 새로운 나침반으로 삼고 있듯, 한국 사회도 “각 세대가 어떻게 다른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물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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