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243〉K연구의 패러독스:노벨 과학상이 아직 나오지 않는 이유

2025-10-22

올해 노벨상 시상식에서 이웃 나라 일본은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를 연이어 배출하며 기초 과학 강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자 첨단 산업 강국인 대한민국에는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부재라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다. 한 나라 기초 과학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노벨상의 문은 왜 우리에게만 굳게 닫혀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빨리빨리' 문화는 과학계에도 그대로 투영돼 단기적 성과와 가시적인 결과만을 재촉한다.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과학 발견은 수십년에 걸친 외롭고 지루한 탐구 과정이며, 수많은 실패를 쌓아 올리는 인고의 노력 속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한국의 연구 환경은 이러한 기다림을 용인하지 않는다. 당장의 특허 출원이나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응용 연구만이 환영받고, 연구자는 정부 과제와 재계약을 위해 해마다 혹독한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 이러한 단기 결과 지상주의는 이미 정답을 정해두고 효율적으로 지식을 암기하는 입시 위주 교육 시스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결과, 학생들이 교과서 밖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며 질문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경험이 구조적으로 부족해지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을 지배하는 획일적 평가 시스템에 있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SCI급 논문 편수, 인용 지수, 연구비 수주액 등 철저히 양적 지표에 의존하는 덫에 갇혀있다.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를 우리나라 대학에 임용한다 해도, 정해진 강의 시수, 필수적인 행정 업무, 그리고 매년 일정량의 논문 제출이라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 해고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측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연구의 깊이가 아닌 논문의 개수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이 제도는 수십년간의 숙성 기간이 필요한 심층 연구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직된 시스템은 인재의 씨앗 자체를 말려버리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며, 한국 사회는 안정성과 높은 소득이 보장된 의대 진학으로 우수 인재가 집중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의대 쏠림)에 직면해 있다. 최상위권 인재들이 정부와 산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지정한 첨단 이공계 학과 대신 의약학 계열로 몰리는 것은, 이들이 이공계 연구 개발직의 장기적 경력 안정성에 근본적인 불신을 표명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더욱이, 혹독한 국내 연구 환경에서 박사 학위까지 마친 젊은 과학자들조차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충분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해외 선진국으로 떠나는 고질적인 두뇌 유출 현상이 고착화돼 연구 생태계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선진국의 사례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일본은 이미 30명에 가까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기초 과학 강국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일본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연구자가 외부 간섭 없이 하나의 주제에 오랜 기간 몰두할 수 있도록 시간적·재정적 안정성을 국가와 대학이 보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연구 풍토는 당장의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며,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고 순수한 진리 탐구 과정 그 자체를 존중하는 장기적 비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연구 환경은 혁신적인 연구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정량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초기 단계에서부터 좌절되도록 만든다. 초기 가능성을 정량 지표로 재단하는 순간 혁신의 싹은 쉽게 잘리고, 연구의 깊이를 희생한 파편화된 연구에 몰두하게 만드는 비극이 한국 연구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연구비 총액 증액을 넘어, 연구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대전환이 절실하다. 정부와 대학은 평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파하고 양적 지표 대신 연구의 수월성과 파급 효과를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특히, 초기 단계의 창의적인 연구에 대해서는 당장의 성과 보고 의무를 과감히 완화하고, 잠재력 있는 연구자에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연구자 중심의 장기 지속형 지원 모델'을 구축해야한다. 연구개발(R&D) 투자에서 '경제적 효율성'과 '학술적 수월성 및 자율성'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해, 기초 과학 분야에 '자율적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외부 압박 없이 최소 10년 이상 오직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노벨상의 결실은 기술 개발의 시계를 재촉하는 조급함이 아니라, 학문의 가치를 인정하고 실패의 과정을 성숙의 기간으로 용인하는 사회적 인내심에서 맺어진다. 학생들에게 질문할 자유를, 연구자들에게 실패할 권리를 보장하며, 우리 사회가 기초과학에 대한 단기적 기대를 버리고 진정한 학문의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노벨상이라는 열매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과학의 나무에 열릴 것이다.

서용철 국립부경대 교수·전 대한공간정보학회 회장 suh@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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