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봉황무늬 수막새, 천년을 건너온 실크로드 문양
후백제 연주 봉황문, 연주 동물문에 담긴 동서 교류
실크로드 연주 동물문의 여정, 산치대탑에서 무진고성까지
연주 동물문의 동방 전파, 서아시아에서 후백제까지
【전문】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 작은 언덕 위에는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Mauryan) 왕조의 아소카(Ashoka) 대왕이 불교를 장려하면서 조성한 산치대탑(Great Stupa at Sanchi).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산치 제1 스투파 난간에 새겨져 있는 원형 주연부 안에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이다.(그림1) 한편 1989년 전남 광주 무진고성(武珍古城)에서 주연주가 연주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속에 봉황을 새겨 넣은 후백제 시대 수막새(그림3)가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수막새는 산치대탑에 보이는 원형 패턴 새 문양과 흡사하다. 무엇보다 사산조 페르시아 시기에 대유행했고(그림2,4,6,7),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된 연주 동물문(連珠動物紋)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슨 소리일까?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크로드 ‘연주 동물문’의 역사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 연주 동물문과 연주문의 상징적 의미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후백제 봉황무늬 수막새는 연주 동물문(Pearl roundels with animal patterns) 기와이다. 연주 동물문(連珠動物紋)이란 연주문 속에 사자, 맷돼지, 그리핀, 공작, 봉황, 용 등 동물을 새겨 넣은 문양을 말한다. 여기서 연주(連珠)는 '이어진 구슬' 또는 '연결된 진주'를 의미한다. 진주는 고대부터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으며, 왕권과 부를 상징했다. 또 둥근 구슬 모양은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를 상징하며, 우주의 순환과 영원성을 나타낸다. 특히 연주문은 서아시아 파르티아 시대를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국왕의 초상화를 연주문으로 장식하여 왕권의 수호를 상징하는 코인을 발행하는 등 크게 유행했다.(그림4) 한편 불교에서 연주는 보배구슬(如意珠)을 상징하며, 깨달음과 지혜를 의미하고 부처의 사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연주문은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화 교류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미술의 중요한 장식 요소로 자리잡았다. 한반도에서는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백제 무늬벽돌이 최초의 연주문인 동시에 연주 동물문이다.(그림5)
△ 연주 동물문의 상징성
연주 동물문에 새겨 넣은 여러 가지 동물은 무엇을 상징할까? 먼저 사자(lion)와 맷돼지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군사적 힘과 왕권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그림6) 특히 맷돼지 도상은 죽은 사람의 영생을 기원하는데도 활용되었다.(그림7) 시무르그(Simorgh)는 페르시아 신화에서 불사조로 신성한 지혜와 치유력 그리고 왕권의 신성함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상이었다. 그리핀은 수호신적 존재를 상징했으며, 페르시아 예술에서 주로 연주 안에 배치되어 신성한 권위를 나타냈다. 독수리 문양은 초원 지대에서 하늘과의 소통, 힘과 용맹을 상징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공작 문양은 힌두교와 불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공작은 힌두교에서 카르티케야(Kartikeya)신의 탈것이자 사라스와티(Saraswati) 여신의 상징이었고, 불교에서는 지혜、자비、치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공작 문양은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전파되어 왕권과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그림8) 봉황은 고대 동아시아에서 고귀한 상상의 영물로 황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으며, 현명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평화로운 시대에만 나타난다고 여겨졌다.(그림 3.12)
△ 연주 동물 문양의 동아시아 전파
연주 동물문이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되는 데는 소그드 상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은 호화로운 견직물 무역을 통해 페르시아의 이 문양을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소개했다.(그림9) 특히 당나라 시기 개방적인 국제 문화와 맞물려, 이 문양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이국적 요소로서 귀족 사회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경주박물관 연주문 장식 입수쌍조문(立樹雙鳥紋) 석주(그림10)와 일본 호류지(法隆寺)에 전해지는 사자수문금(獅子狩文錦)은 7-8세기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적 복합성과 국제적 교류망을 증명한다.(그림11) 또 이 시기 중국의 장인들은 기존의 페르시아 양식을 재해석하여 중국적 미감에 맞게 봉황이나 용과 같은 중국의 전통적인 상상의 동물들을 연주 안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백제 역시 한반도에서 서역풍 연주 동물문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기와에도 새겨 넣었다. 백제를 계승한 후백제도 마찬가지였다.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연주 패턴 봉황무늬 수막새는 봉황의 좌우 날개를 화려하게 접고, 몸통을 유난히 튀어나오게 강조하는 후백제인만의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그림12) 여기서 우리는 실크로드의 예술적 유산 연주 동물문이 천년을 건너 동아시아까지 전파되고 후백제인에 의해 창조적으로 수용된 흥미로운 예시를 확인할 수 있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