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두번이나 “사표 반려”…그래도 떠난 대우맨 36년 그뒤

2025-12-28

1976년 5월, 난 스물 일곱 살에 당시 최고의 대기업인 대우에 입사했다. 급여가 경쟁사인 삼성·현대의 두 배는 족히 됐다. ‘회사에 최선을 다해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리라’ 결심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공식 근무, 이어지는 야근,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상사에게 이끌려 새벽까지 계속되는 술자리…. 이런 생활이 월화수목금금금, 주 7일 이어졌다.

어느 날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목 한쪽이 부풀어 올랐다. ‘이러다 말겠지’ 하며 방치했더니 점점 커져 남의 눈에도 쉽게 띌 정도였다. 안되겠다 싶어 동네 병원엘 찾았다. 검사 2주 뒤,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수술은 오후 4시가 돼서야 끝났다. 병원에선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며 입원을 권했지만 입원비가 없어 당일 퇴원했다.

돈도 없었지만, 회사 일이 밀려 자리를 비울 수 없었어요. 특히 대우는 출결 상황이 나쁘면 진급에서 누락됩니다. 저는 회사 일에 모든 걸 걸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결근할 순 없었죠. 수술 다음 날 바로 양복 입고 출근했어요.

그 시절, 내 월급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군 전역하면서 결혼한 아내와 한 살짜리 어린 아들, 극심한 가난 속에서 날 경복중·경복고·서울대에 보낸 부모님, 그리고 어린 동생들까지….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출퇴근과 통원 치료를 병행한 지 1년여 만에 다행히 완치 판정을 받았다.

몸도 돌보지 않고 일에 매달렸던 나는 회사에서 “아주 기특한 엘리트”라고 금방 인정받았다. 대리 시절부터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의 눈에 들었고, 부장 시절엔 김 전 회장이 친필 사인을 해 내 인사 발령을 따로 낼 정도였다. 난 내심 “언젠간 ㈜대우 사장에 오를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나는 대우에서 나이 마흔에 부장 직급을 끝으로 사표를 냈다. 이후 창업으로 갖은 고생도 했지만, 항상 좋은 기회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 74세까지 급여가 끊이지 않는 꽃길을 걸었다.

목숨 걸고 일하며 임원을 넘어 사장까지 꿈꿨던 ‘엘리트 사원’ 정상곤(76)이 이른 나이에 사표를 낸 사연, 준비 없이 시작한 인생 2막이지만 34년간 풍족한 급여 생활자로 탄탄대로가 펼쳐진 비결, 인생 3막을 위한 나의 준비와 계획까지 소상히 들려드리겠다.

은퇴Who 36회 〈목차〉

📌 물지게 지던 움막집 소년, 대우 엘리트 사원으로

📌 창업 4년 만에 전업…그 사연은

📌 7개월 정성 끝에 따낸 산노와의 제휴

📌 해외기업 한국법인 대표·고문 제의 줄이은 비결

📌 [은퇴 후 조언] 인생 3막은 상담 봉사…이 원칙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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