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경민(35·KT)은 2009년 2차 1라운드 전체 7번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10년여를 리그 최고로 뛰었다. 두산 ‘황금기’ 속 핵심 전력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공수에서 견고한 플레이로 전력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KT는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허경민을 품었다. 적지 않은 나이의 허경민에게 4년 40억원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일단 허경민을 데려오면서 가장 무서운 ‘천적’을 하나 지웠다. 허경민은 KT에 무척 강했다. 타율 0.309 7홈런 61타점을 기록한 지난 시즌 KT 상대 타율이 0.432(37타수16안타 13타점)에 달했다. 수원 경기에서는 타율 0.435(23타수10안타 8타점)를 쳤다.
허경민 영입은 5년 만의 대권 재도전을 준비하는 2025시즌 KT의 판을 흔들고 있다. 모든 변화는 허경민에서 시작된다.
이강철 KT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통해 허경민을 주전 3루수, 3번 타자로 못박았다. 허경민은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수비수지만 주포지션은 3루수다. 통산 한 번 뿐인 골든글러브 수상(2018년)도 3루수로 받았다.

허경민이 들어오면서, KT의 붙박이 3루수였던 황재균이 연쇄 포지션 이동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일찌감치 포지션 변경 ‘운명’을 받아들인 황재균은 스프링캠프에서 글러브 4개를 준비해 훈련해왔다. KT는 주전 유격수 심우준까지 FA 자격을 얻어 한화로 떠나자 허경민을 영입했고, 시범경기를 통해 이 내야진 교통정리를 마무리해야 한다. 1987년생인 황재균의 수비 부담을 줄이면서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 점은 기대해볼만하다.
KT는 지난 3일 일본 오키나와 킨스타디움에서 가진 KIA와 연습경기에서 강백호-멜 로하스 주니어-허경민으로 상위타선을 구성했다. 팀의 핵심 강타자인 강백호를 리드오프로 내세우고 외국인 거포 로하스로 뒤를 받친 테이블세터를 구성했다. KBO리그 역대급 ‘강타자 테이블세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같은 타순 실험도 허경민 영입으로 가능해졌다.

이 감독은 “허경민이 없었다면 3~4번이 비어 (강)백호를 1번으로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허경민은 3번 등 중심타자로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테이블세터 또는 하위타선에서 징검다리 역할이 더 익숙했다. 지난 시즌 두산에서도 2번과 7번 타순에서 가장 많은 타석에 섰고, 3번 타자로 나선 경기에서는 27타수 7안타에 그쳤다. 2023시즌에도 3번 타순에서는 뛰지 않았고, 4번 타순에서도 한 타석만 소화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허경민의 컨택 능력에 주목하며 변화를 택했다. 폭발력 있는 테이블세터 뒤에 허경민을 놓으면서 볼카운트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고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했다.
KT는 5년 연속 가을야구에 나갔고 그 중 2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강팀이다. 그리고 올해의 변화는 허경민 영입으로부터 시작됐다. 스프링캠프에서 시험한 야수진의 모든 것이 허경민의 합류에서 비롯됐다. 그 변화가 얼마나 높은 완성도로 이어질지가 올시즌 KT의 힘, 나아가 리그 상위권의 판도를 휘저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