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3년 4월 2일, 지중해 북쪽 에게해에서는 역사를 가르는 전쟁이 벌어졌다. 공격자는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였고, 수비자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였다. 술탄은 냉혹하고 지략을 갖춘 21세의 청년이었고, 수비자는 믿음이 국가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한 49세의 장년이었다. 튀르크 병사는 8만 명이었고, 동로마 병사는 4만2000명이었다. 황제는 “전쟁이 끝나면 피해의 4배를 갚아줄 것”이라고 독전(督戰)했고, 술탄은 “콘스탄티노플에 승리한 다음 3일 동안의 약탈품은 너희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쟁은 동로마의 해군과 튀르크의 육전대 사이의 싸움이었다. 술탄은 동로마의 육지에 상륙하고자 했지만, 성채와 포격을 허물 수가 없었다. 이에 콘스탄티노플 북쪽의 금각만으로 진군하고자 했으나 해저에 쇠사슬과 창살이 매설되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술탄은 함선을 육지로 끌어올려 적군에게 보이지 않는 육로에 레일을 깔고 코끼리를 동원하여 끌고 동로마의 후미에 하륙하여 공격했다.

전쟁은 58일간 지속한 끝에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끝났다. 동로마제국의 할머니들은 맷돌을 제공하여 성채를 쌓고 수저를 공출하여 포탄을 만들었지만, 돌궐(突厥)의 후손에게 정복되어 2000년 로마제국의 닻을 내렸다. 술탄은 충청북도의 3/4에 이르는 면적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고 수도를 옮겼다. 라틴 민족들은 이 수모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서양식당에 가면 고구마처럼 생긴 노란 빵이 있다. 동로마제국 멸망 이후 라틴문화권에서는 이 빵을 초승달처럼 구부려서 굽는다. 왜 그럴까? 튀르크의 국기에 초승달(언월도)이 그려 있기 때문이다. 이 빵을 크레상(crescent·초승달)이라 하는데, 그들은 그 빵을 씹으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쓸개를 씹은 장수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