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무적함대, 해가지지 않는 영국, 미국의 항공모함은 세계 패권의 상징이다. 중세시대부터 세계를 장악한 나라의 경쟁력은 해군 전투력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높은 임금과 숙련 인력 부족으로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져 중국에 비해 군함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또한, 고장 난 군함 수리에도 몇 년씩 걸려 전력 공백이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한 제조업의 쇠락이나, 조선 산업의 경쟁력 문제를 넘어 미국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시하는 국가 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조선 산업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는 일본, 중국, 한국 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기술은 우리나라에 추월당했고, 신흥 강자 중국은 미국의 국가 안보상 협력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맹국 중 최고의 조선 건조 기술을 보유한 한국이 대안으로 부각 되고 있다.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 발주처로부터 신뢰받고 있다. 특히, 24년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은 현지에 기술자들을 파견해 지연되고 있던 선박 제조를 단기에 완성해 납품을 완료했다. 여기에 더해 연간 1~2척 수준이던 건조 능력을 8척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어서 미국이 크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대표 조선사들은 이미 2029년까지 생산 가능한 선박을 모두 수주해 추가 생산이나 대규모 수리가 어려운 실정이다. 거의 유일하게 도크가 남아 있는 곳이 바로 현대중공업 군산공장이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은 25만 톤급 선박 4척을 동시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북아의 중심인 서해안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미군 함정 수리에도 최적지로 평가된다.
군산은 한때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양날개 삼아 비상했던 산업 도시였다. 현대중공업과 한국GM 군산공장은 수천 명의 노동자와 수많은 협력업체, 그리고 인근 상권까지 살리는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2017년 조선소 가동 중단과 2018년 한국GM 공장 폐쇄로 지역 경제는 급격히 침체 되었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행히 민선 8기 출범 이후 전북자치도와 군산시의 노력으로 22년 10월 조선소 재가동에 성공했지만, 현재는 완성 선박 건조 대신 블록을 제작해 울산에 납품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제안한 것이 ‘MASGA 프로젝트’다.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뜻으로, 한국과 미국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다. 미 해군 함정의 MRO(유지·보수·정비) 기지를 한국 내에 구축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으며, 군산이 그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다면, 군산과 전북 경제 회복에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마침, 10월말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조선소 등을 시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져 군산에 한미 조선업 협력 생산 기지가 세워지고 수많은 선박이 건조된다면, 지역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는 최고의 배움을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했다. 곤궁에 처해서 배우는 것. 즉, 어렵게 배운 지식이 지혜가 된다는 말이다. 군산이 겪은 어려움으로 기업 유치가, 지역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마스가 프로젝트가 밑거름이 되어 군산의 아픔이 치유되고, 다시 번영의 길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정진상 전북신용보증재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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