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치유 화훼장식의 역사

2025-09-10

[전남인터넷신문]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매개체로 존재해 왔다. 일본에서도 꽃은 단순한 미적 장식의 차원을 넘어, 마음을 정화하고 영혼을 안정시키는 도구로 발전해 왔다. 일본에서 화훼장식이 치유와 연결된 것은 불교 전래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6세기경 불교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사찰에서는 불상 앞에 꽃을 바치는 공화(供花)의 풍습이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불심을 표현하고, 참배자의 마음을 맑히며 괴로움을 덜어내는 정신적 치유의 행위였다. 또한 헤이안(平安) 시대의 궁중 문화에서는 사계절의 꽃을 장식하여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심신의 조화를 이루려 했다. 당시 귀족들에게 화훼장식은 미적 향유를 넘어 삶의 불안을 완화하고 정신적 위안을 주는 중요한 장치였다.

15세기 무렵 일본에서는 화훼장식이 단순한 생활 장식을 넘어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수행의 길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 등장한 다찌바나(立花)는 꽃과 나무를 엄격한 규범에 따라 꽂아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엄한 형식이었다. 에도(江戸)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유파의 이케바나(生け花)가 성립하였고, 이는 심신 수양과 정신 집중을 위한 수행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케바나는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행위가 아니라, 꽃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내면을 정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하나의 치유적 활동이었다. 또한 다도(茶道)와 결합한 다화(茶花)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을 단정히 꾸밈으로써 인간관계 속의 긴장을 풀고 심리적 평온을 제공했다.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병원에서는 병실에 꽃을 두어 환자의 회복을 돕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꽃의 생명력과 향기는 환자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불러일으켰다. 쇼와(昭和) 시대 초기에는 이러한 흐름이 교육 현장으로까지 확대되어, 학교에서 꽃을 다루는 수업이 정서 교육과 인격 수양을 위한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즉, 근대 일본 사회에서 꽃 장식은 단순한 미적 기호가 아니라 의료와 교육을 매개하는 정서적 치유 자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는 고령자 시설이나 장애인 복지기관에서 꽃꽂이 활동이 도입되어 정서 안정과 사회적 교류 촉진에 효과가 있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꽃을 다루는 행위는 손의 소근육을 사용하는 재활 훈련의 의미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는 치유의 기능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한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의 영향을 받아 꽃을 활용한 치유 연구를 본격화되었고, 플라워세라피(Flower Therapy)라는 이름으로 학문적·실천적 체계가 확립되었다. 병원, 호스피스, 요양시설에서는 환자와 입소자들이 직접 꽃을 꽂거나 꽃을 가까이 두는 활동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서는 꽃의 향기와 색채가 기억을 자극하고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과 인지 기능 유지에 기여한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는 하나이쿠(花育, 꽃 교육)라는 이름으로 아동들이 꽃을 만지고 장식하는 수업이 확산되었다. 이는 아동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며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플라워 페스티벌, 도심 속 정원, 플라워 아트 전시 등이 주민과 방문객에게 심리적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플라워 세라피 관련 다양한 협회와 민간단체들은 꽃을 활용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도시민의 정신 건강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치유 화훼장식이 단순한 예술이나 오락을 넘어 사회적 복지와 공공 건강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화훼장식은 불교 의례 속의 공양 → 화도와 이케바나의 정신 수양 → 병실과 교실 속의 정서 교육 → 현대의 플라워세라피와 지역 사회 치유라는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시대마다 역할과 의미는 달라졌지만, 꽃은 일관되게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을 위로하는 힘을 발휘해 왔다.

오늘날 일본 사회는 고령화와 도시화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위로와 정서적 치유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유 화훼장식은 전통적 미학과 현대적 과학이 결합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앞으로도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송미진. 2025. 치유 화훼장식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09-06).

송미진. 2025. 화훼장식과 치유 화훼장식.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09-02).

송미진. 2025. 치유농업 측면에서 화훼장식의 매력,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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