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4성 장군의 정중한 거수경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26

1950년부터 1953년까지 6·25 전쟁 기간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서 싸운 외국인은 195만명이 넘는다. 이는 민간인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까지 포함한 숫자다. 거의 200만명 가까운 인원이 ‘잘 알지 못하거나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와 그 국민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4만명 넘는 이는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한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의 6·25 전쟁 참전용사 가운데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이 대거 배출되었으나 국가원수에 오른 인물은 딱 한 명뿐이다.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1992~1998년 재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28년생인 라모스는 흔히 ‘웨스트포인트’로 불리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898년부터 약 50년간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 역사를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필리핀이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다.

필리핀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쨰로 지상군 병력 파견을 결정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선 처음이었다. 당시 소위 계급이던 초급 장교 라모스도 신생 필리핀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보내졌다. 그는 1952년 5월 강원 철원에서 벌어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승만 대통령이 라모스의 부대에 표창장을 수여했다.

필리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을 거쳐 1992년 대통령에 오른 라모스는 이듬해인 1993년 5월 한국을 방문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대통령 취임 후 처음 맞이한 국빈이었다. 당시 라모스는 “소위 시절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한국에 41년 만에 다시 와서 경제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며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1994년 필리핀에 간 YS는 “6·25 전쟁 당시 라모스 대통령과 필리핀 장병들이 흘린 피와 땀은 오늘날 한국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20여년을 더 살고 2022년 별세한 라모스는 한국·필리핀 우정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25일 로메오 브라우너 필리핀군 합동참모의장(육군 대장)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6·25 전쟁 기간 필리핀이 파병한 군인 7400여명 가운데 112명이 전투 도중 목숨을 잃었고, 그들의 이름은 기념관 내 유엔군 전사자 명비에 새겨져 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이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병력을 파병해 준 소중한 우방국”이라고 인사하자, 브라우너 합참의장은 우리 FA-50 전투기 추가 도입 계획을 밝히며 “한국산 무기가 필리핀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길 기대한다”는 말로 화답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의 협력이 영원하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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