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어른들 때문에 한때 불행…이젠 겨울을 견딘 이유 알게 돼”

2025-01-19

보육시설서 자랐던 청년 8명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 펴내

모임 ‘몽실’ 만들어 후배들 자립 도우면서 자신들의 아픔도 치유

[주간경향] 봄이 되면 넓은 정원에 벚꽃잎이 흩날렸다. 여름이면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매미 소리를 들었다. 학교가 끝나면 큰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 술래잡기도 했다. 수요일 목욕 시간엔 친구들과 탕에 들어가 게임도 했다. “보육시설에서 살았다고 하면 ‘불행했겠다’라고 생각하는데 편견이에요. 저는 보육시설에서 행복했거든요. 지금도 그곳에 가면 맡을 수 있는 특유의 공기가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요.”(이진희씨)

부산의 한 보육시설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된 20~30대 청년 8명이 최근 책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호밀밭)를 펴냈다. 이들은 4년 전 후배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을 돕는 모임 ‘몽실’을 결성하고 부산시 연제구에 같은 이름의 카페를 만들어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들 여덟 청년이 각자의 아픔을 나름의 방식으로 치유해 나간 이야기가 담겼다. 여덟 명의 저자 가운데 카페 실무를 맡은 이진희씨(32)·박진솔씨(31)와 지난 1월 14일 영상회의 서비스 ‘줌’으로 대화했다. 두 사람은 보육시설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안다”

이씨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밥그릇에 밥을 적게 퍼서, 혹은 술 취한 아버지의 설교를 듣다 졸았다는 이유로 맞아 “늘 여기저기 멍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이씨 사정을 알게 된 학교 상담 선생님의 도움으로 보육시설에 가게 됐다. 이후의 변화에 대해 이씨는 이렇게 썼다. “아빠는 항상 화가 나면 내가 가장 아끼는 것부터 부쉈다. (중략) 난 아무것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가장 소중하면 먼저 망가진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시설에 들어와서야 무언가를 마음껏 좋아할 수 있었다.”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에서 여덟 청년은 각자의 아픈 사연을 담담한 목소리로 전한다. “1990년 10월의 어느 날, (갓 태어난)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전봇대 밑에 버려졌다”는 고백, 보육시설을 뛰쳐나와 울며 매달리는데도 “무슨 소리 하노, 다시 올라가”라며 외면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인연이 끊어진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품에 안겨있는 다른 아이를 보고 보육시설을 스스로 선택한 이야기 등을 저자들은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안다.”

“숨길 이유가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어요. 힘든 시절이 있었어도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죠.”(이씨)

저자들은 자신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나갔다. “아이는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자란다. (중략) 나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깨달음, “그 시절 우리에게 필요했던 따뜻한 어른이 돼 주고 싶다”는 소망, “보란 듯이 성장하겠다”는 다짐까지, 각자를 추스른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상통하는 데가 있다. 저자들은 아픔을 얘기하되 거기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저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여덟 살 때부터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야’라는 확신이 있었다. (중략) 늘 이어지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는 못난 어른들 때문에 한때 불행했지만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끝내 내려놓지 않은 아이들의 성장기다. 행복한 추억이 많은 보육시설이었지만 선배들의 폭력적 신고식 등 잘못된 관행도 있었다. 저자들은 시설 내 부조리를 없애나가는 노력도 기울였다.

저자들의 나이는 만 24~35세다. 보육시설을 나와 대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가 됐고 일부는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사회에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는 가운데 다시 보육시설 후배들에게 눈을 돌린 것도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이 계기가 됐다. 박씨는 “명절에 함께 모여 축구를 하곤 했는데, 4년 전 크리스마스에 모였을 때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모여서 후배들을 위해 뭔가 해보자’는 얘기를 하게 됐다”면서 “거창하진 않았다.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의 모임 이름인 ‘몽실’은 ‘열매를 꿈꾼다’는 의미다. 만 18세가 되면 보육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하는 후배들이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자는 뜻을 담았다. 자립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1 대 1 멘토링 프로그램, 초등학생 후배들과 나들이를 나가는 프로그램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 저자 중 한 명은 사회복지사가 됐는데, 마침 저자들이 자란 보육시설에서 자립 전담 요원으로 일하고 있어 프로그램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었다고 한다.

자립을 준비하는 10대 후반의 보육시설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주로 털어놓을까. “일단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부터 난관이에요. 전세나 월세 등 행정적인 부분을 많이 묻고요, ‘외로움을 느낄 것 같다’는 걱정도 많이 해요”(박씨), “대학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등 진로 고민도 많아요. 가정을 일찍 꾸리고 싶어하는 아이도 많은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그릇이 됐는지를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그냥 외롭다고 결혼해선 안 된다’고 얘기해주고 있어요.”(이씨)

초등학생 후배들과 함께하는 나들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노는 시간”이다. “가정에선 당연히 하는 경험인데 시설에 살기 때문에 못 하는 것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자전거 타는 법 배우기’예요. 먹고 싶은 걸 직접 고르게 하기도 해요. 시설에선 ‘메뉴 선택’을 못 하거든요. 마라탕, 탕후루를 많이 고르더라고요.”

■우리가 ‘겨울’을 버틴 이유

몽실의 청년들은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3년 전 각자 빚을 내 카페도 차렸다. 사실 카페까지 열려고 했을 때는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고 한다. 특히 카페 실무를 맡게 된 박씨의 경우 이미 택배기사로 가정경제를 잘 이끌어가고 있는 상태여서 지인들의 걱정이 컸다.

주위 걱정대로 현실은 냉혹했다. 지난해 잠시 운영을 중단할 정도로 ‘카페 시장’의 쓴맛을 본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후원자가 나타나 카페 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별도의 후원 없이 홀로서기 위해서 두 사람은 매일 정성껏 쌀빵을 만들고 아몬드 쿠키를 굽는다. 이씨는 “지금은 프로그램 운영비를 모 재단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증빙 때문에) ‘사진 찍기’ 등에 익숙해진 것이 마음 아프다”면서 “카페로 돈을 많이 벌어서 ‘결과물 제출’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먼 훗날, 이 카페가 자립준비청년을 많이 채용해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고 했다.

보육시설 퇴소 후 10여 년. 어렵사리 사회에 적응했는데 후배들까지 다독이며 사는 것이 버겁지는 않을까. “아이들을 만나면서 저 자신을 치유하고 있어요. ‘괜찮아, 지금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어’와 같은 얘기를 많이 해주는데 그게 결국은 ‘과거의 나’에게 하는 얘기였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많이 합니다. 책 제목대로, 저희는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요.” 이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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