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평] <폭싹 속았수다>는 이 혼란한 시대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네

2025-03-21

제목이 제주 사투리다. 극의 배경도 제주, 주요 인물도 제주 사람이다. 원래는 ‘폭삭 솟앗수다’라고 써야 한다. 서울사투리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과 같다. 바로 위로와 걱정을 담아 건네는 말이다. 넷플릭스에 4주에 걸쳐 한번 4회씩 총 16회가 공개하는 <폭싹 속았수다>에 깔려있는 이야기 역시 제목 그대로다.

1막은 1950년대 제주에서 시작한다. 어른 애순(문소리)의 회상을 따라 전복 따는 해녀로 식구들을 책임지는 어멍 광례(엄혜란)을 보여준다. 광례는 애순을 떼어놓고 재가했지만 매일 찾아오는 딸 애순은 본가에서 구박을 받고 있다. 부모 없는 딸자식이란 이유로 밀려난 것이다. 그런 딸을 데리고 온 광례는 더 깊이 바다로 들어가 전복을 땄고, 결국 29세 나이로 요절했다.

이제 진짜 고아가 된 애순(아이유)은 이부동생을 챙기며 고등학생이 됐지만 대학생이 돼 뭍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혔다. 지독한 가난뿐 아니라 차별이 깨어 있는 여성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손을 내밀어 잡은 이가 순수하고 애순만 눈에 담고 사는 관식(박보검)이다. 관식은 애순을 따라 부산으로 야반도주를 할 만큼 정성이다.

물론 이틀도 되지 않아 둘은 잡혀서 제주로 돌아왔지만 결국 여러 난관을 넘어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미 둘 사이에 금명(아이유)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후로 드라마는 젊은 날의 애순과 대학생 금명을 번갈아 가면서 2막 여름으로 넘어간다.

이 드라마의 소개를 보면 ‘모험 가득한 일생’이라고 짧게 적어 두었다. 삼대에 걸쳐 현대사를 관통하는 일생을 다뤘지만 주인공들이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순탄하지 않고 빛이 나고 눈물겨운 순간들로 범벅되어 있다. 그래서 위로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 위로는 다만 주인공 애순과 관식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숨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뜬 광례,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할머니 김춘옥 등 애순의 가족뿐 아니라 관식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애순을 조카로 아끼는 해녀들까지 모두 따스한 시선으로 지켜본다.

선악의 구분은 없다. 반대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 사랑은 남녀의 것도 되고 부모 자식도 된다. 그리고 너무 절절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펑펑 난다. 결국 ‘살민 살아간다’란 제주 말처럼 일생을 걸으며 누구나 겪는 순간 앞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더구나 애순의 딸 금명을 통해 그 일생이 대를 이어 어떻게 이어지는지 드러난다.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이후 국내에선 가장 큰 화제를 부르는 작품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만 아는 설정과 공감대라고 생각했는데 대만, 태국, 카타르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1위를 기록했다. 아이유와 박보검의 연기는 합이 너무 좋다. 반대로 다른 배역들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제 몫 이상을 했다.

제주를 배경으로 했지만 제주 사투리를 잔뜩 채우거나 시대 배경으로 빼놓기 어려운 4.3 항쟁이 등장하진 않았다. 다만 이야기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설정으로 감안할 수 있다. 70년 가까이를 담고 있지만 시대극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속살을 건드리는 것 같은 감성, 명대사들을 곱씹는 것도 큰 기쁨이다.

내란의 시대, 아직 정상화되지 못해 혼란스러운 때라서 이 드라마가 고맙게 보이는 것도 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가. 우리 모두 “폭싹 속았수다.”이지 않은가.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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