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계엄 사태,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올해 인수합병(M&A) 시장 전망을 수정했습니다. 올 초부터 반등할 줄 알았지만, 국내외 정치 리스크가 잦아들 연말이나 시장이 활기를 띌 전망입니다.”
이정훈 삼일회계법인 부대표(PE그룹장)는 6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M&A 회복의 구체적 트리거는 국내에서는 대선 이후, 국외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때로 본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시중 금리가 안정을 찾아야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대표는 PE그룹과 TS(거래자문)·FDD(재무실사) 리더를 겸임하고 있다. SK스페셜티 인수·매각 회계 자문과 로레알의 닥터지 인수 자문 등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국내 PE의 딜을 두루 담당해왔다.
이 부대표는 M&A 시장이 본격 회복에 접어들면 프라이빗에쿼티(PE)들의 입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올해 M&A 시장은 이미 PE가 주도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면서 “시장에 자금력을 갖춘 주체를 보면 대부분 PE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PE의 경우 펀드레이징이 호조를 보여 자금력은 충분하다. MBK파트너스는 10조 원 규모의 펀드레이징을 진행 중이고, IMM PE도 2조 5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다.
주목하는 매물은 주요 대기업 사업부나 계열사를 떼어 파는 카브아웃 딜을 언급했다. 그는 “SK와 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한 리밸런싱을 진행 중”이라며 “대기업 매물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풀리면 PE 간 인수 경쟁이 대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PE 간 거래도 활발할 것으로 봤다. 현재 시장에는 DIG에어가스,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클래시스, 롯데카드, HPSP, 프리드라이프 등 조(兆) 단위 매물이 다수 나와 있다. 이 부대표는 “이 중 7개가 PE 보유 자산이고 4개 이상이 매각을 재시도하는 건”이라며 “대기업은 사들일 여력이 되지 않고, 결국 같은 업계 PE가 인수하는 세컨더리 딜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산업 별로는 순환경제, 테크, 에너지·인프라 분야가 유망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AI 발전에 필요한 데이터센터와 관련 인프라 구축 수요가 커지면서 에너지, 인프라, 테크가 융합되는 산업 부문에서 딜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부대표는 PE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도 강조했다. 그는 “PE가 단순히 수익만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 정부와 은행이 주도하던 구조조정보다 PE를 통한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이 더 효율적”이라고 역설했다.
이 부대표는 PE그룹장으로서 회계법인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게 목표다. 그는 “실사와 밸류에이션이라는 전통적 자문 영역을 넘어, 산업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전략, 인수 후 운영 자문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대표는 임기 내 이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할 탄탄한 인력풀과 그간 쌓아온 전문성이 무기다. 삼일은 빅4 회계법인 중 가장 큰 100여명 규모의 PE 전문팀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도 4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강점은 주요 PE들과의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무진의 높은 전문성이다. 그는 “PE는 한번 업무 스타일이 맞으면 파트너를 잘 바꾸지 않는 특성이 있다”며 “실무진이 PE의 요구사항에 맞추는 데만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그만큼 전문성과 경험이 중요한 시장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