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약 50년 전 필자의 기억 속의 크리스마스이브는 하얀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강원도 태백의 어느 교회에서 연극 속의 예수 역할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갈릴리 호수에서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해주는 대사 중 가난한 자는 마음에 복이 있으니. 밤새 찬송가를 부르며 집마다 예배를 보러 다니던 시절. 가정마다 음식이며 헌금으로 찬양을 함께해 주던 날이 있었다.
새벽녘까지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야 받아 든 과자 꾸러미를 보며 밤에 다녀가셨다는 모친의 말에 왜 안 깨웠느냐고 투정을 부렸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에게 같은 사기를 쳤는데 여전히 먹혔다. 그제는 성탄절 이브였다.
성냥팔이 소녀의 힘든 삶만큼이나 날씨도 지갑도 썰렁하다. 최근 들어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비교적 잘 맞는 편이다. 동지섣달 추운 날씨를 춥다고 했으니 맞는 것이고 이제는 실제 기온과 체감기온으로 나눠 그 차이가 수십 도를 웃돈다.
이래 맞건 저래 맞건 어떤 것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인 셈이다. 최근 영하 20도를 예보해서 밤늦도록 화장실과 주방마다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놓았다. 수도꼭지만 해도 70개에 한번 틀었다 잠그는 데만 1시간도 족히 걸린다.
물론 실제 온도는 영하 3도, 단 한곳도 얼지 않았다. 공공기관에서는 수도계량기가 동파 될 수 있으니 보온 덮개나 이불 등을 덮어 동파 예방에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한다. 이러다 한 번은 제대로 한파가 오겠지만 그때는 또 뭐라 할 것인가.
몇십 년만의 강추위가 왔다고 온갖 호들갑을 떨 것이며 이미 얼어붙은 수도나 기타 시설물의 파손은 뒷북 칠 것이 자명한 일이다. 자연재해는 미리 예방만 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각설하고, 날씨만큼 지갑이 춥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다.
필자는 문제를 제시할 때 대안도 병행하지만 돈 문제만큼은 참으로 대책 세우기가 어렵다. 비현실적인 대책은 꺼내봐야 무용지물이고 딱 현금 놓고 얘기해야할 일인데 현금은 은행과 거둬놓은 세금을 어떤 식으로 타내느냐에 있는 것이지 말은 말일뿐이다.
시중에 서민들의 자금난은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 일단 건설경기부터 안 좋다. 이제는 일거리가 있어도 자재 대금 인상, 인건비 인상, 미분양 속출 등으로 업체들이 쉽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 사는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노동 분야의 규제와 관련법이 점차 엄격해지면서 사람보다 로봇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간다.
가령 근로자 1명을 고용하자면 주 52시간 미만, 시간이 넘거나 초과근무를 하면 별도의 수당을 주어야 하고 4대 보험에 월차, 연차 휴가와 대체 휴일 등 온갖 여건 다 감수해야 한다. 뿐인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갑질로 신고 당하고 퇴직금과 실업급여의 중간 경유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반면 로봇을 이용하면 월 이용료가 인건비의 절반도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단순한 자판기에서 시작된 기계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조금씩 변해가니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장들이 하나둘씩 증가하는 것은 근로자 보다 로봇의 장점이 더 크기 때문인데 이런 추세라면 일자리가 없다거나 일할 곳이 없다는 불평마저 아득한 전설이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기계보다 더 낫다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마트나 식당의 키오스크는 기본이고 고속도로 하이패스 등 제조업까지 손이 안 가는 데가 없다. 또 다른 변화는 무인 편의점이다. 편의점 CU·GS25·세븐 일레븐·이마트24의 전국 무인·하이브리드 점포 수는 약 4,000곳이다. 2019년에 비해 5년 새 20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담배·술 등 미성년자 구매 금지 품목이 있어도 모바일 인증수단을 통한 담배 자판기가 대체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수입이 있어야 지출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코로나19처럼 지원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어느 누가 보태줄 사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당장에 쓸 수 있는 돈이 카드대출인데 지난 10월 말 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NH농협카드의 카드 장기대출 잔액은 42조 2,201억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8월 기준 41조 8,310억 원을 넘어섰다. 평균 금리도 전년 대비 0.6%높아졌다.
현금서비스 잔액도 6조 7,681억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카드 대출이 당장의 허기는 면해주겠지만 이 또한 빚이며 제1금융권보다 이자도 높고 돌려막기라도 하지 않으면 신용에 문제까지 생긴다. 물론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맹추위, 즉 제3 금융권과 사채까지 기다리고 있다.
위에서 나열한 글을 요약하자면 날씨는 추워지는데 기계에게 일자리를 모두 뺏기고 지갑도 추워지니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사실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가 100도를 넘기기를 바라며 각처에서 서로 돕는 온정의 분위기가 만연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복지기금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에게 전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탄절 이브 날 창밖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눈이 내리고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면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 같지만, 그것도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함께 행복한 것이지 빈털터리로 맞이하는 성탄절. 1,100만 명이 독신이다. 혼자 있는 누군가에게는 더욱 힘들고 슬픈 날이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하나씩 불을 피우다가 그것이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각처에서 시종식을 가졌다. 올해도 이제 5일 남짓 남았다. 어젯밤도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 선물을 줄 것이라 믿으며 잠든 아이들에게 더욱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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