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내려졌다. 남들은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따스한 시간을 보내는 연말연시에 숙제를 끌어안고 머리 싸매게 생겼다. 발단은 좋은 님이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이 불황에도 이만큼 손님이 많은 것이 참 감사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 동네에서 여기만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아서 쓸쓸하네요. 동네가 다 살아나야 왱이집도 오랫동안 북적북적할 터인데.”
동문 오거리에도 한파가 불어닥치다 보니 그나마도 우리 가게가 나아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창일 때에 비하면 우리 가게 매출도 말이 아니다. 좋은 님 말마따나 이 동네가 잘될 때는 우리 가게뿐 아니라 집집마다 손님이 줄을 선 곳이 많았다. 콩나물국밥집만 해도 대여섯 곳이 50미터 이내에 몰려있었고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두 손에 꼽고도 남았다. 어디는 밥을 처음부터 말아 펄펄 끓여내기도 하고 콩나물의 두께나 익힘 정도도 다르고 밑반찬도 조금씩 다르다 보니 일행의 취향 따라 손님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달라졌다. 그 많던 콩나물국밥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좋은 님의 말씀을 숙제로 여기는 것은 내 맘에 이미 비슷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주무시는 동안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 가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어준 문구이다. 개업 후 내내 365일 연중무휴로 하루 24시간 영업해 온 내력이 끊긴 것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이었다.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 음식점 영업시간을 제한한 것이다. 이후 감염병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침체된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치솟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하기 여전히 벅차다.
손님마다 ‘언제 다시 24시간 영업하냐’고 묻지 않아도 이것은 내 가슴에 큰 고민으로 웅크리고 있다. 고작 국밥 한 그릇이지만 그 온기가 필요한 이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 24시간 영업을 해온 것인데, 어느 손님이 의외로 전해온 말씀에 이런 영향도 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깃집에서 식사하고 소주나 맥주로 2차 3차 한 다음, 여기 와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딱 하고 가야 제대로 된 코스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가게가 24시간 영업하던 시절에는 인근에 밤늦게까지 장사하는 다른 가게들이 많았다. 저마다 서로의 손님에 기대고 서로를 응원하며 장사하고 있던 셈이다.
최근에 찬물을 맞은 일이 있다. 인근에 큰 숙박업소가 들어선다고 하여 완공되면 이 거리에 손님이 늘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싶어 공사 중 이런저런 편의를 돌보아주었다. 구두로 한 약속이라 가벼웠던지 이후 안면을 바꿔버린 모습에 적잖이 상처받았다. 이런저런 꼴을 다 볼 줄 알아야 진정한 장사꾼이 된다는데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책더미를 뒤적이는데 고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손끝에 잡힌다. 그래, 비슷비슷한 콩나물국밥집들이 어깨를 겨루고 아웅다웅하면서 지내던 시절이 훨씬 재미있었다. 누구네는 어떤 콩나물로 바꿨다더라, 누구네는 어떤 손님이 다녀갔다더라 속닥거리다가도 김장김치를 나눠 먹으며 ‘성님네 올 김장 참 잘됐네!’ 함께 기뻐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올겨울도 춥단다. 여느 겨울보다 추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살아온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춥지 않은 겨울은 없었다.
이 책에 담긴 노신의 시구절을 읊어본다.
한응대지발춘화(漢凝大地發春華). 꽁꽁 얼어붙은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우리라!
유대성 전주 왱이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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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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