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계절, 다른 일상. 이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수는 2818명에 달했다. 이같은 수치는 냉방이 더 이상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특히 에어컨 설치가 어렵거나 전기요금 부담으로 인해 냉방을 포기하는 가구에게는 더 절박한 현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난히 길어진 더위와 급격한 기온 상승은 이제 단순한 기후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생활 기반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이기도 하다. 냉방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여름의 열기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무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냉방이 잘 되는 공간에서 여름을 보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창문조차 열 수 없는 방 안에서 무더위를 견뎌야 한다. 홀로 사는 고령자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손바닥 만한 방 안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층 등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기후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기후약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비와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 전기요금 부담에 냉방기기 사용을 꺼리거나 공간적 제약으로 에어컨 등 냉방기 설치가 불가능한 주거 환경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생존과도 직결되는 사안인만큼, '모두가 시원할 권리'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냉방 인프라의 접근성이 낮은 계층과 지역에 대한 세심한 실태 조사와 통계 구축이 선행돼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폭염 취약계층에게는 에너지 바우처 확대나 적절한 냉방기기 지원 등이 실행돼야 한다.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한 커뮤니티 냉방쉼터 확대, 공공주택 내 냉방 설비 기준 마련 등 제도적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 냉방 취약계층을 단순한 복지의 대상이 아닌, 기후 불평등을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도 '편의'를 넘어 '접근성'을 고민해야 한다.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 역시 무거워지고 있다.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도달할 수 있는 기술. 그 안에 에너지 효율과 사용 편의성을 담아야 한다. 여름은 모두에게 오지만, 시원한 여름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직 평등하지 않다. 이 간극을 좁히는 데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업계는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냉방은 단순히 바람을 만들어내는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직결되는 공공재로 다뤄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너지 복지도 더는 미룰 수 없다. 냉방은 단순한 편의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공공주택에는 에너지 효율 냉방기를 기본으로 설치하고,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를 활용한 시스템 도입도 고려돼야 한다. 지역 특성과 주거 형태에 맞춘 맞춤형 정책 역시 중요하다. 민관 협력을 통해 냉방 사각지대를 줄이고, 에너지 기업의 책임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냉방은 이제 삶의 질을 지키는 기본권이고 기술과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폭염 앞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기후약자'라는 말이 사라지는 미래를 위해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
김상우 파세코 상무 swkim@pase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