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지가 만난 세계
에리카 피셔 지음
윤선영·배신수 옮김
산지니
프랑스 파리를 주무대로 식민지 한국의 해방을 지원해 줄 것을 전 세계에 호소했던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공로는 뒤늦게 인정받은 편이다. 한국 정부는 1995년야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백범 김구의 파리 특파원’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유럽에서 맹활약한 서영해는 해방 후 초대 외무장관 지명이 유력할 정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그는 광복 후 국내 정치의 분열과 갈등으로 한동안 중국에 머물다 끝내 서울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960년께 북한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삶이 지금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그에게 오스트리아 출신 부인 엘리자베스 브라우어가 낳은 아들과 2명의 손녀, 1명의 증손녀까지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수지가 만난 세계』는 손녀 수지 왕이 지은이 에리카 피셔와 함께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탐험 서사다.
1902년 부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서영해(본명은 희수)는 동래공립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13일 학생들과 함께 거리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숨어다니던 서영해는 같은 해 4월 말 열일곱 나이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 심양을 거쳐 임시정부가 수립된 상하이에 도착한다. 상하이에서 미래인재로 발탁된 서영해는 임정 지도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한 그는 이곳에서 유럽을 배우며 1947년 5월 귀국 때까지 강연과 전 세계 신문·잡지 기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일제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알리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유럽 국가들이 조선의 상황에 주의를 갖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고려통신사를 설립했으며 임시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 조소앙 등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임정의 유럽외교특파위원, 프랑스 대표로 임명돼 사실상 주프랑스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1933년에는 이승만이 조선 독립 외교 활동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서영해가 늘 그를 동행하며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다.
서영해는 파리에 공부하러 온 오스트리아 여성 엘리자베스 브라우어를 만났으며 1937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시청의 슈타인홀에서 호적상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파리에서의 결혼생활은 짧게 끝났다. 엘리자베스는 비엔나로 돌아가 1939년 9월 서영해의 아들 스테판을 출산했는데 끝까지 그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스테판의 딸이자 서영해의 손녀인 수지도 한국인 할아버지 이름 석 자만 알았을 뿐이다. 1970년생인 수지는 2013년 한국 국립박물관 웹사이트 검색 등을 통해 할아버지의 흔적 찾기에 나섰다. 수지는 2019년 대한민국과 할아버지의 독립투쟁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 때 여동생 스테파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이 책은 앞으로 유럽에서의 식민지 한국 독립운동을 더 광범위하게 밝혀 나가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