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빈(36·KIA)은 지난해까지 제주도에서 스프링캠프 준비를 했다. 처가가 있는 제주에서 개인훈련하며 후배 몇몇을 동반하던 김선빈의 미니캠프에 지난해에는 박찬호(30), 최원준(28), 박정우(27)가 함께 했다.
이 중 김선빈(0.329)과 박찬호(0.307)는 지난 시즌 타율 3할을 쳤다. 박찬호는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최원준은 타율 0.292로 2021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고, 박정우는 데뷔 이후 가장 오랫동안 1군에 머물며 66경기에 출전해 KIA 우승에 빛나는 조연으로 기록됐다. 1군 선수로 자리잡으며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았다.
이 김선빈 캠프가 올해는 해외로 진출했다. KIA가 2차 캠프로 이동할 일본 오키나와에서, 그것도 프로 구단들이 사용하는 야구장에서 운동한다.
김선빈은 9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10일부터 훈련하고 20일 귀국한 뒤 23일 선수단과 함께 미국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난다. 박찬호, 박정우와 역시 동행했고 포수 한준수(26)가 새로 합류했다. 열흘이지만 넷이 한 조가 되어 훈련하면서 야무지게 스프링캠프를 준비하고 올 계획이다.
알려진대로 훈련을 위한 체류 비용을 김선빈이 지불한다. 그러나 비용보다도 훈련지를 섭외한 과정에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부 담겨 있다.
넷이 훈련하는 장소는 오키나와의 이시카와 구장이다. 2019년까지 LG 1군이 스프링캠프에서 사용했던 구장이다. 2023년에는 SSG가 2차 캠프를 치렀고, 삼성이 2군 스프링캠프로 썼다. 일본 구단들도 종종 찾는 구장이다. 프로 팀들이 쓰는 구장을 KIA 선수 4명이 대여해 훈련하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 날씨가 춥다고 느껴 올해는 해외 훈련을 계획하고 있던 김선빈은 당초 일본 주니치 투수들과 공동 훈련하는 큰 그림도 그렸다. 12월부터 일본 주니치 출신인 나카무라 다케시 배터리 코치에게 부탁해 추진했다. 거의 성사가 됐었고 투수들만 온다는 말에 포수 한준수를 미니캠프에 합류시켰다. 연습이지만 일본 투수들 공을 받아보는 것이 한준수에게 큰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함께 훈련은 하지 못하게 됐다. 주니치의 사정으로 공동훈련이 무산됐다. 그 뒤 요미우리가 이시카와구장에 들어온다고 했다. 요미우리의 등장에 김선빈 캠프는 야구장에서 밀려날 뻔한 위기에도 놓였지만 김선빈은 “우리는 배팅 훈련만 하니까 작은 공간이면 충분하다. 사용료는 그대로 내겠다”고 했다. 후배들이 요미우리 선수들 곁에서 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요미우리가 구장을 옮기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KIA 선수들은 프로구단들이 베이스캠프로 사용하는 이시카와 구장에서 개인훈련하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매년 오키나와에서 야구장 대여는 하늘에 별따기다. 본격적인 캠프 기간이 되면 야구장을 섭외하지 못한 국내 구단들은 옮겨다니며 원정경기만 하기도 한다. 아직 본격 캠프철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개인훈련을 하면서 일본 구장을 대여하는 선수들은 없었다. 김선빈은 KIA가 일본 캠프 때마다 도움 받는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시즌 중부터 부탁해 구장 섭외를 진행했고 어렵게 대여할 수 있었다.
김선빈은 “오키나와에는 일본 선수들도 많이 오니까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한 번 하면 다음에도, 내가 없더라도 KIA 선수들이 가게 되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까 일본 선수들과 같이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무산돼서 아쉽지만 그래도 일본 야구장을 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오키나와 숙박비는 치솟는 중이다. 숙박비만 500만원을 훌쩍 넘긴 4명 체류 비용을 책임지는 김선빈은 “야구장 대여료는 오히려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비용을 다 내가 내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선빈은 “전부 내가 하고 싶었는데 (박)찬호가 (박)정우 몫까지 숙박비는 직접 내겠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그럼 차량 렌트는 자기가 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작년 제주에서도 차량 렌트는 찬호와 원준이가 같이 했다. 그렇게 자꾸 자기가 내려고 하더라”고 웃었다.
넷은 오키나와 이시카와 구장에서 돌아가며 투수가 되어 던져주고 타격 훈련을 하며 기술훈련을 준비할 계획이다. 박찬호는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계획하고 떠났다. 2024년 제주에서처럼, 선배가 정성스레 준비한 오키나와 미니캠프를 통해 KIA는 2025년에도 성공을 향한 여정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