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현양 행사 함께한 호주 대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09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매년 4월25일은 ‘안작(ANZAC) 데이’로 기념된다. 안작이란 명칭은 ‘호주·뉴질랜드 연합 군 단’(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영문 이니셜에서 비롯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둘 다 영국 식민지에서 출발해 자치령을 거쳐 독립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양국은 영국 등 연합국을 돕고자 자국군을 머나먼 유럽으로 보냈다. 1915년 4월25일 이 병력은 당시 독일의 동맹이던 오스만 제국(현 튀르키예) 공략을 위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에 투입됐다. 하지만 작전은 엄청난 사상자만 남긴 채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을 더해 1만명 넘는 전사자가 나왔고 두 나라 국민은 크나큰 슬픔에 잠겼다. 오늘날 양국에서 안작 데이는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안작의 쓰라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호주와 뉴질랜드는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파병을 결심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대의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호주는 전쟁 기간 연인원 1만7164명의 병력을 한국에 보냈는데 규모로 따져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에 이은 5위에 해당한다. 340여명이 전사했고 그중 280여명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작은 나라임에도 3800명 가까운 장병을 파병해 이 가운데 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한국에 거주하는 호주와 뉴질랜드 국민은 매년 4월25일 안작 데이가 되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모여 기념식을 거행한다.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희생된 군인들도 안작 데이의 추모 대상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1994년 문을 연 전쟁기념관은 창립 31주년이 된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이 40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세계적 관광 명소로 떠오른 기념관의 위상을 높이 평가한 서울시는 지난해 기념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명칭을 ‘삼각지(전쟁기념관)’로 변경해 역명에 기념관을 병기하도록 했다. 그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2024년 한 해 동안 기념관을 찾은 이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20일 기념관에 갔다가 ‘올해(2024년)의 300만번째 방문객’이 되는 영예를 안은 이들은 뜻밖에도 호주에서 온 한국계 호주인 가족이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가 미리 정성껏 마련한 기념품을 받아든 호주인 부부는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자녀들에게 한국 역사를 알려주고 싶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전쟁기념사업회에 의해 ‘3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사를 현양하기 위한 행사가 7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안 의사의 5촌 조카 안의생씨,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등과 더불어 특별히 제프 로빈슨 주(駐)한국 호주 대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호국 영웅의 희생을 기리는 현양 행사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우며, 미래 세대에게도 큰 의미를 남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4년 4월 한국에 부임한 로빈슨 대사는 한국계 여성과 결혼한 것은 물론 외교부 한국과장도 지낸 호주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외교관이다. 우리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자리에까지 함께해준 호주와 호주 국민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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