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15일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탈리아 의회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유엔 가입 6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의 일환이었다. 유엔 창설이 1945년의 일인데 오늘날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이탈리아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1955년에야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는 점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유엔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에 맞서 싸운 연합국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점과 관계가 있다. 추축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는 애초 유엔의 ‘적’이었던 셈이다. 같은 추축국인 일본은 이탈리아보다 한 해 늦은 1956년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분단 시절인 1973년에야 동·서독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이탈리아는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한국에 의무 부대를 파병했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부터 정전협정 체결 이후인 1955년까지 연인원 128명의 이탈리아 의사 및 간호사들이 한국에서 복무하며 약 23만건 이상의 처치 및 시술을 수행했다. 2023년 11월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국빈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이탈리아는 고마운 친구”라고 인사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소재한 우신초등학교 안에는 1999년 제막한 이탈리아 의무 부대 6·25 참전기념비가 있다. 왜 초등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있을까. 이는 전쟁 기간 이탈리아가 운영했던 제68적십자야전병원, 일명 ‘야전병원 68호’가 지금의 우신초 부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관광 명소 태종대에 1976년 들어선 6·25 의료지원국 참전기념비는 5각면 형태의 콘크리트 탑이다. 왜 5각면일까. 전쟁 당시 의료진을 보내 한국을 도운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5개 의료지원국을 기리려는 뜻이 담겨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독일도 6·25에 참전한 사실이 인정돼 의료지원국이 6개국으로 늘었다. 앞으로 의료지원국 참전기념비를 다시 짓는다면 6각면 형태가 돼야 할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해군 대외협정실장(준장)을 맡고 있는 안토니노 프렌자 제독이 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이탈리아는 6·25 전쟁 당시 전상자뿐 아니라 민간인 치료와 구호 활동을 해준 고마운 나라”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에 프렌자 제독은 “전쟁기념관 방문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뜻깊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기념사업회에서 선물한 ‘ROK’(대한민국)와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기도 했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라는 지형적 공통점이 있다. 2023년 이탈리아 대통령 국빈 방한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양국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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