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캠페인 피니시 더 잡: 한국
삼형제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면서 시작됐다.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부부는 경제적 문제로 언성을 높였고,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 손에 들린 칼에 찔려 사망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과 아버지의 구속으로 삼형제는 공황상태가 됐다. 첫째는 25살이지만, 동생들은 아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다. 어머니 사망 전 치료비도 청구됐다. 월드비전과 인천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병원비와 장례비, 생계비를 지원했다. 유자녀들의 심리상담도 맡았다. 아이들은 부모 사라지고 나서 빚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부채를 아이들이 떠안지 않도록 법률 전문가들이 지원에 나섰다.
월드비전은 피니시더잡 캠페인으로 국내 범죄피해아동과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범죄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한 회복지원사업(하트힐링)’을 벌이고 있다.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와 재단법인 아가페, 사단법인 온율, 아동복지실천회 세움과 협력해 범죄로 피해를 본 아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부터 3년간 총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지난 4월에는 분야별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전문자문위원단도 꾸렸다.
범죄피해 아픔 딛고 다시 세상으로
범죄피해아동은 크게 직접 피해를 본 아동과 가족 중 범죄피해자가 있는 아동으로 나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직접 피해를 본 미성년자는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94만4934명으로 2017년 조사(80만98명)에 비해 18%나 증가했다.
포항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발굴한 이소혁(16)군은 집단폭행으로 치아 여러 개가 부러졌고, 일부는 신경이 노출될 정도로 손상됐다. 폐섬유증을 앓는 어머니는 외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일은 할 수 없고, 이혼한 아버지는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가해자 처벌은 끝났지만 소혁군에게 치료비와 학교생활 적응은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월드비전 지원으로 소혁군은 지난 8월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대학 진학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국내에 범죄피해자보호법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지원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례가 많다”며 “또 수용자 자녀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수감으로 심리·정서적 위기, 경제적 위기 등 복합적 위기를 겪지만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복지지원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했다.
수용자 자녀에게 부모의 수감 경험은 ‘숨겨진 형벌(hidden sentence)’로 불린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월드비전의 수용자 자녀 긴급지원 대상자 중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례가 전체의 60%에 달했다. 월드비전은 아시아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와 함께 수용자가 잠시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가족돌봄귀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알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을 위해서다.
범죄피해아동의 약 25%는 가족 내에 가해자가 있다. 범죄 피해 아동인 동시에 수용자 자녀인 셈이다.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범죄로 인해 직간접적 피해를 본 아이들은 가해자 가족, 피해자 가족 구분 없이 우리 모두 돌봐야 하는 존재”라며 “현재 여러 전문기관과 함께 협력해 지원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수용자 자녀는 또다른 피해자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미성년 수용자 자녀는 1만1972명으로 조사됐다. 지난 2021년 1만2167명, 2022년 1만450명인 점으로 봤을 때 꾸준히 1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자녀들을 연령대로 구분하면, 10~14세가 3886명(약 32.5%)으로 가장 많았고, 5~9세 3297명(27.5%), 15~19세 3040명(25.4%), 0~4세 1749명(14.6%)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조사는 수용자 대상으로 기명 설문을 통해 조사되기 때문에 설문에 응답하지 않거나 자료 공개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해 자녀 존재를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 2018년 무기명으로 같은 조사를 했을 때 집계된 미성년 자녀는 2만1765명이었다.
해외에서는 아동인권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가족의 체포단계부터 수감 기간, 출소 이후까지 단계별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범죄자가 임산부거나 양육자일 때 일정 기간 선고 집행을 연기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임산부 또는 10세 미만 자녀를 돌보는 주양육자인 경우 선고 형량 중 최장 4년을 가택구금이나 치료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사법사회복지가 제도화된 나라로 꼽힌다. 수용자의 미성년 자녀 유무를 반드시 확인하고, 아이들을 지원할 복지기관을 의무적으로 파악한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공식 시스템에 포함된 형태다. 범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처벌하지만, 남겨진 가족은 사회복지 제도로 지원해 양자가 균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신연희 교수는 “수용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가장 큰 동기부여는 가족”이라며 “수용자 1인에게 들어가는 직간접 비용이 연간 3100만원 수준인데, 재범률이 낮아지면 이러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