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씨(37·가명)는 재활 시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약을 끊을 생각이 없었다. 엑스터시부터 케타민, 코카인, 필로폰까지. 그가 복용한 약물이다. 처음 수사기관에 잡혔을 때는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약물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 곧바로 다시 약에 손을 댔다. 검찰이 연결해준 교육은 마약을 끊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모 권유로 마약중독재활공동체 ‘경기도 다르크’에 들어가면서도 ‘3개월만 버티고 나와서 다시 약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씨는 재활 시설에서 새 삶의 기회를 찾았다. 재활은 10년 넘게 약을 끊을 생각이 없던 그가 1년 넘게 단약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씨는 “법의 틀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중독을 재활로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씨가 다니던 시설은 불미스러운 일로 문을 닫았다. (▶관련기사: 공공이 외면한 마약중독 치료, ‘마지막 동아줄’마저 끊어졌다) 이씨는 시설이 없어진 뒤에는 더 많은 중독자가 자신처럼 재활할 순 없을까를 고민한다. 이씨는 지금 한 대학원에서 중독재활학을 공부한다. 재활 분야에서 일하길 꿈꾼다.
사법·치료·재활 과정을 거치며 보고 듣고 느낀 문제점이 너무 많다. 지난 5일 만난 이씨에게 회복 당사자로서 한국에서 중독 재활을 하기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은 재활에 도움이 되나.
“법원에서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받았다. 매달 보호관찰소에 가는데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느낀다. 상담은 시간에 쫓기듯 짧게 이뤄진다. 담당자는 내가 약을 하는지, 안 하는지 관찰할 뿐이다. (보호관찰은) 회복이나 재활에 의미 있는 절차로 느껴지지 않는다.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200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작업 내내 누군가가 나더러 왜 사회봉사를 받으러 왔냐고 물어볼까 두려웠다. 다들 법을 어긴 사람들이지만 약물중독은 사회적 낙인이 크기 때문에 더 드러내기 두렵다. 같은 작업장에서 나처럼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던 사람도 약물 문제를 겪은 사람이었다.”
- 교육 부분에서 느낀 문제가 많았나.
“80시간 약물치료 수강명령을 받았다. 40시간짜리 강의를 두 번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엉뚱한 내용을 가르치는 일도 있었다. 지난 9월 교육에서 한 수강생이 항갈망제에 관해 질문했는데, 강사가 ‘마약 중독은 약한 마약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며 어쨌든 약물 치료는 안 좋은 거라고 답했다. 잘못된 정보다. 좋은 강사도 있지만 틀린 내용을 가르치거나, 중독자를 향한 편견을 드러내거나, 중독자들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이해를 못하는 강사들도 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 재활 시설이 필요한 이유는.
“같은 시설 안에서 동료들이 약물 없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약에서 멀어져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약을 할 때는 좋은 학벌과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도 다시 약을 할 생각만 했다. 재활로 중독에서 벗어나니 최저시급을 받고 일해도 지금이 더 행복하다. 법의 틀에서 해결하지 못한 약물중독을 재활 시설이 해결해준 것이다. 혼자였다면 단약 초기에 드는 상실감에서 절대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동체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
- 중독자들이 갈 수 있는 재활 시설이 여전히 부족하다.
“그나마 있던 재활 시설마저 사라지면서 중독자들이 더 음지로 숨어들었다. 치료보호기관도 여전히 부족하다. 재활 시설도, 치료기관도 훨씬 많아져야 하는데 사회적 낙인 때문에 어렵다. 정부 부처조차 ‘잠깐의 마약 평생의 낙인’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렸더라. 정부가 중독자를 ‘낙인찍힌 자’로 공인하는 것이다. 낙인은 중독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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