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다”던 김건희 여사

2025-08-10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쯤 지났을 무렵인 2023년 9월, 자살 예방 관련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를 본 적이 있다. 자살의 갈림길에 섰던 청년과 자살 예방 활동가의 모임이었다.

김 여사는 축사하던 중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제가 죽기만을 바란다”는 얘기를 했다. “어느 종교인이 (해외 순방길에) 비행기가 떨어지라고 하는 걸 들었다”고 하면서 “정신과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김 여사의 다음 발언은 뜻밖이었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서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리투아니아 명품 논란 직후 발언

이후 한동훈·조태용에게 문자 보내

구속 기로에서 진정한 사과 필요

무슨 일을 하려고 했고, 어떤 대목에서 막혔을까. 이 시점은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 명품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되기 두 달 전이다. 남북관계를 이끌 구상이나 인사 관여 의혹이 잠복했을 때였다. 내조에 전념하겠다던 영부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니 의아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이 시기는 김 여사에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해 11월의 명품백 수수 영상도 충격이었지만, 두 달 전인 7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김 여사 부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해 7월 11일 김 여사는 리투아니아의 명품숍에 있었다. 유럽 순방 중 경호원 10여 명을 이끌고 명품 가게에 간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에선 폭우 피해가 속출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 일정을 취소하며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상황이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김 여사 특혜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오히려 순방 일정을 연장해 우크라이나로 갔다. 김 여사의 명품 쇼핑 의혹이 터지고 전국에서 수해 사망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뜻밖이었다. 중앙일보 2023년 7월 17일자 1면 머리기사가 ‘오송 지하차도 비극’이고 두 번째가 ‘윤 대통령, 젤렌스키와 연대 선언’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귀국 직후 수해 현장인 경북 예천에 달려가 군경을 독려했고, 이틀 뒤 예천에서 채 상병 비극이 터졌다. 지금 세 개 특검 중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이 이 시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내일(12일)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다툴 주가조작 의혹(2010~2012년)이나 공천개입·청탁(2022년 4~7월) 혐의는 훨씬 전의 일이다. 만약 김 여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던 시점 이후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처신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터진 명품 논란에 국민의힘에서도 김 여사 사과를 요구했다. 김 여사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사과 거부 텔레그램 문자가 공개돼 민심이 악화했다. 국민의힘 총선 완패를 부른 악재는 김 여사와 채 상병 사건이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에서 불과 4표 차로 통과했다. 김 여사 부부가 총선 전에 진지한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계엄 직전 김 여사와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문자메시지를 교환한 장면도 낯설다. 제2부속실 미설치도 화를 키웠다. 김 여사가 열의를 보인 자살 예방 활동은 서울 마포대교에서 경찰관에게 지시하는 듯한 사진 한 장으로 역풍을 맞았다.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배포되지 않을 사진이었다.

위기에 몰린 김 여사는 이제라도 상식의 세계로 돌아와야 최악을 면한다.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게 출발점이다. 김 여사는 세 번 사과했으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내조에 전념하겠다던 대선 전 사과는 허언이 됐다. 명품백 수사 검사에게 했다는 사과는 아니한만 못했다. 최근 특검에 출석하며 한 사과는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사족을 달아 면죄용 논란만 키웠다.

이제 사과할 기회도 얼마 없다. 한 번이라도 국민의 마음에 와닿는 사과를 할 수 없을까. 서울구치소에서 전대미문의 반항을 하는 남편을 대신해 비상계엄에 대한 사죄까지 한다면 국민이 받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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