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다. 그리고 곧 새해다. 이 시기에는 제철 맞은 음식처럼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플로가 돌아온다. 연말연초는 가족과 함께 하세요…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혈연 중심 가족의 허구성, 모성 신화 등을 비판하며 ‘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자 노력했다. 이제 가족이 마냥 숭고하거나 완벽하지만은 않으며, 형식상의 정상가족이 더 구성원에게 학대와 착취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가족 같은 사이’는 가‘족’같은 사이라는 언어유희로 변질되어 부정적인 용례로 쓰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이라는 것은 악력이 세다. 2025년 상반기 최대의 화제작은 전통적인 가족주의 미덕을 내세운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였고, 최근 공개된 영화 <대홍수>(넷플릭스)의 서사에서 반복되듯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인간을 이끄는 동기는 가족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세상에서 나를 지지해줄 존재, 나의 정서적, 금전적 자원을 쏟아부으며 사랑해도 되는 존재를 향한 갈망은 커지기 마련이다. 가족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고, 더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KBS 유튜브 채널 ‘여의도 육퇴클럽’에서 새롭게 만든 <이웃집 가족들>은 주목할 만하다.
<이웃집 가족들>은 무려 KBS 저출생위기대응방송단이 제작한 유튜브 예능 <이웃집 남편들>의 스핀오프 콘텐츠이다. 공개 직후부터 화제였던 홍보 포스터에는 “어디까지 가족인데요?”라는 문구와 함께 출연진의 가족 사항이 기입되어 있다. “여자끼리 아기 낳음”, “애가 둘 싱글 게이”, “그냥 딸 둘 낳음”, ”혼자 아기 낳음“. 각각 정자 기증을 통해 아기를 낳은 레즈비언 부부 김규진, 조카를 입양해 자식으로 키운 오픈리 게이 홍석천, <이웃집 남편들>에도 출연했던 이성애자 부부 곽범,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은 비혼모 사유리가 그 주인공이다. KBS 뉴스에도 한 번씩 나갔을 만큼 꽤 유명세가 있으며 상징적인 인물들이긴 하지만 이들을 모은 곳이 공영방송의 저출생위기대응방송단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웃집 남편들>이 결혼으로 가족을 꾸린 정상 가족의 남성 출연자가 등장하여 결혼생활의 희로애락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면, <이웃집 가족들>은 비전형 가족의 삶에 집중한다. 아이를 안 낳아서 문제라고 하면서 정상가족 바깥의 아이는 외면하는 세상에서, 드디어 저출생 문제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간 듯하면서도 ‘이제서야?’라는 생각이 교차하는 기획이다. 12월 19일에는 1화 ‘가족의 탄생’이, 26일에는 2화 ‘육아는 어려워’가 공개되는 일정이다.
<이웃집 가족들> 1화에서 출연진은 가족을 이루게 된 경위를 자유롭게 털어놓는다. 곽범은 프로그램 내에서 ‘이쪽’과 ‘저쪽’이라는 표현으로 표상되는, 다른 정체성의 세계를 연결하고 소개하는 MC다. 일종의 앨라이(Ally·성소수자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 역할을 하며 이성애-정상가족 규범의 틀이 적용되는 지점이나, 다르게 작동하는 부분을 질문한다. 홍석천이 조카를 입양해서 가족이 된 것과 사유리가 비혼모로 아이를 낳은 사실은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이 가족의 형태를 선택하고 유지하며, ‘나는, 우리는 이렇게 산다’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은 고군분투의 역사 그 자체다.
홍석천은 연예계는 물론 전 분야를 통틀어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고, 즉시 방송계에서 퇴출된 후 오랫동안 외면당했다. 홍석천은 대중이 바라는 ‘톱 게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복귀에 성공했고, 여전히 냉혹한 차별과 퀴어를 재미로 소비하는 제한적 관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중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수자의 대표가 된 홍석천은 ‘좋은 퀴어’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동시에 짊어진다. 그런 그가 조카를 입양하여 사랑으로 키웠다는 사실은 그래서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가족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데 홍석천은 자신이 입양한 아이와 함께 반드시 ‘잘’ 살아야 하고, 그 아이는 ‘잘’ 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전형 가족의 문제 사례로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테니까. 홍석천은 종종 자신의 경제력 덕분에 조카(자식)를 설득하기 수월했다는 유머를 구사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공고한 차별이 아이를 상처 입힐 위험을 차단하는 전략이자, 자신이 ‘퀴어여도’ 좋은 양육자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하는 외침이다.
가족을 이룰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성애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기준이 소수자를 검열한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너와 가족을 이룬 사람도’ 불행해질 것이라는 저주가 쏟아진다.
실제로 홍석천은 조카들이 놀림 받을까 봐 졸업식이나 입학식에도 가지 못하고, 유학을 보냈다고 밝혔다.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선택한 후 사유리에게 자신의 편견과 불안을 쏟아낸 이들은 마치 사유리의 아이를 걱정하는 척, 그 아이가 당할 차별을 우려하는 척했다. 아이와 사유리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그 상상 속의 ‘아이를 차별할 세상’이 아니라, 그 발언으로 차별과 배제를 실천하는 장본인인데 말이다. 사유리가 KBS 육아 예능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자 KBS 본사 앞에서는 사유리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시위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비슷한 일을 “결혼은 6년차, 아이를 낳은지는 2년” 됐다고 소개한 김규진도 겪었다. 김규진은 신부만 두 명인 결혼식의 경험이나, 외국계 회사가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축하한 일, 출산 후 손주의 존재 덕분에 단절될 뻔했던 가족과 연결된 일화를 공유한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마치 홍석천이 능력 있고 좋은 퀴어여서 그의 입양이 별 반발 없이 수용되었던 것처럼, 특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성애자 부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경험이 왜 소수자에게는 ‘특권을 갖추어야만’ 가능한지 생각하게 하는 장치이다. 김규진 역시 그것을 잘 알고 활용하며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시선을 살짝 비틀어 꼬집는다.
“여기에서는 저랑 규진 씨만 아내가 있네요?”라는 곽범의 말처럼, 출연진의 가족 구성원에는 흔히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존재가 없거나 중복된다. 기존의 정상가족 담론에서 아내 혹은 엄마, 아빠가 없다거나 (재혼 등으로) 한 명 이상이라는 것은 결핍의 원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떤 삶도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단순명료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유리와 김규진은 “나는 왜 아빠가 없어?”라는 아이의 질문에 “집집마다 가족의 형태는 다 달라요.”, “세상엔 다양한 가족이 있고 우리 가족은 이런 가족이야.”라고 대답하거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준비해서 보여준다고 답한다. 당연하다. 어떤 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정상이었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모계사회가 기본이며, 변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 많은 인간이 소위 말하는 가족 삼각형(엄마-아빠-자식)안에서만 성장할 리 없다. 사유리는 입양을 원했지만, 일본에서는 미혼에게 입양이 허락되지 않아 직접 낳는 선택을 했다. 확장해서 보자면, 한국 사회의 높은 해외 입양율 또한 비혼모와 같은 비전형 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 가정과 같은 ‘정상 가족’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정상가족주의의 산물이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길 원했던 여성들조차 ‘사생아’라는 낙인 때문에 아이를 포기해야 했고(예를 들어 1972년 전까지, 법적 신분에서 정상가족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생아는 혼혈아·고아와 함께 신원보증이 필요한 모든 일상에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다) 국가에서 아이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 여성에게 지급하는 양육비보다, 입양 보낼 때 받는 지원금이 더 많았다. 가족 바깥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부지런히 삭제하고 밀쳐냈던 것이다.
<이웃집 가족들>은 막연한 관념 속의 타자로 존재하던 이들이 얼굴과 몸을 가진 이웃으로 등장하여 말을 건다. 많은 혐오가 무지에서 기인하는 만큼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보편성과 유머의 비율을 적절하게 섞었다. ‘부치계 최수종’이라는 단어로 김규진의 아내 사랑을 강조하거나, 2화 예고에서 육아의 고충으로 공감을 사는 전략을 구사하는 식이다. 유튜브 댓글란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다. 2000년대가 되면 나 같은 사람도 받아줄 줄 알았는데 숫자만 바뀌었다는 홍석천의 말처럼 세상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변한다. 가족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 가족의 사랑과 행복이 세상의 공식에 따랐을 때 자동으로 따라오는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번거로운 수고와 노동을 감수하는 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성별이나 이뤄지는 방식보다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실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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