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국에서 1600여명의 과학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경고 서한을 보냈다. 미국 보건사회복지부가 성별을 생물학적 조건을 바탕으로 재정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서한에서 과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분법적 조건으로 성별을 정의하는 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윤리적 관행, 인권, 기본적 존엄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왜 이분법적 성별 정의가 과학적이지 않은가. 생물학적으로 성별은 염색체, 호르몬, 생식기, 2차 성징 등 복합적 요소에 의해 판단되며, 모든 사람에 이 모든 것들이 일관되지도 않는다. 염색체가 XY여도 Y염색체가 작동하지 않거나 소위 남성호르몬이라 불리는 안드로겐에 신체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 외관상으로는 여성으로 태어나고 자라난다. XX염색체여도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경우가 있고, 여성·남성 어디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신체적 특징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염색체 등 요소에서 특이점이 없어도 성별정체성이 신체적 요소들과 다른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정체성엔 남성도 여성도, 그리고 이분법적이지 않은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리고 성별정체성이란 게 뇌라는 신체기관이 인식하는 성별이란 점에서 이 역시 생물학적 성별의 한 요소이다. 또한 2019년 세계보건기구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것에서 드러나듯 성별정체성은 허구의 개념이 아닌 실존하는 인격의 한 요소이다.
이분법적으로 성별을 정의하는 것이 과학적만이 아닌 윤리적, 인권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성별을 무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확실한 부분은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0.6%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권의 원칙에 부합할 수 없다.
2018년 과학자들이 서한을 보낸 지 7년,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취임 첫날 “오늘부로 미국에는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흘러갔던 성별이분법의 망령이 부활한 것이 안타깝지만 트럼프의 이 선언은 역설적으로 성별이 자연스럽고 확고한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성별의 정의가 누구도 의심할 문제가 아니었다면 미국 대통령이 굳이 행정명령을 통해 이를 선언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역설적 선언 이후 순차적으로 다양한 성별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는 지워져가고 있다. 여권에서 제3의 성별을 표현하는 X 표기가 사라졌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경기 출전이 금지되었다. 이후로도 계속될 수 있는 미국의 이러한 퇴행은 한국에도 영향을 준다. 지속적으로 보도되는 미국발 소식에, 보수개신교 등에 의한 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 선동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지 한국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역시 우려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시적 퇴행은 있을지언정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반인권적 시도는 결국 실패하리라는 것이다. 내란 사태 이후 현재까지도 매 주말 이어지는 광장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광화문에서, 트랜스젠더 여성과 남성,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등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윤석열 퇴진과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동시에 서로의 정체성이 어떠하든 함께하는 동료시민으로 연대하고 환대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인권의 가치를 짓밟은 계엄에 맞서 시민들은 평등과 존엄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민주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에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다시 용기를 내자고 이야기해본다. 때로는 지치고 울음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돌보며 변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고. 다양한 성별정체성 모두가 온전히 존중받는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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