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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반체제운동은
운이 나빴다
동구권의 ‘권력 붕괴’와
한국전쟁 ‘팩트 체크’란
이중 충격에 혁명신념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2020년대의 반체제운동은
1980년대보다 오래갈 듯
개신교의 동조와 응원에
‘권력 붕괴’가 어렵고
‘팩트 체크’ 하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팩트 체크’에 충실한
평균적 이대남이 대선서
결정적 그룹이 될 것 같다
나는 여태까지 두 번의 반체제 운동을 목격했다. 첫번째는 1988년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경험했다. 이미 1987년에 직선제 개헌을 이뤘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와중에 혁명적 에너지가 응축되었던 것이다. 그중 일부는 주체사상을, 일부는 레닌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학교 안에서 강력한 사상적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들은 주체사상과 레닌주의를 버리게 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권력 붕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이 대안으로 여겼던 사회주의 체제의 권력이 무너진 것이다. 1989년에 동독이, 1991년에 소련이 붕괴했다. 북한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대량의 아사자를 냄으로써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두 번째는 ‘팩트 체크’의 힘이다. 소련 시절의 기밀 문서들이 1990년대에 공개되면서 김일성이 한국전쟁 준비과정에서 집요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이 드러난다. 민족을 향해 전면전을 기획한 자가 민족의 영도자일 수는 없지 않은가?
1980년대 반체제운동은 순치
구 사회주의권의 ‘권력 붕괴’와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팩트 체크’는 반체제 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전향이 일어났다. 가장 극단적인 유형은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 넘어간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다수는 전투적 민주주의, 유럽식 사민주의, 그리고 소박한 민중주의 사이의 어딘가를 지향하며 결국 대한민국 헌법에 명기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용하게 되었다. 한때의 반체제운동이 결국 순치되고 체제 내로 편입되는 것은 역사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을 계기로 나는 생애 두 번째로 반체제 운동을 보게 되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의 지적에 의하면,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인 선거, 법치, 언론을 부정한다. 선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도 많다”(1월15일 체포되던 날 ‘국민께 드리는 글’), 법치에 대해서는 “좌파 사법 카르텔에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1월3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언론에 대해서는 “요즘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한다(체포 직전 여권 관계자에게). 이 같은 윤석열에게 동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했고 헌법재판소를 협박하고 있다. 이를 ‘반체제 운동’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1980년대의 반체제 운동은 그들 입장에서는 운이 나빴다. 동구권의 ‘권력 붕괴’와 한국전쟁에 대한 ‘팩트 체크’라는 이중의 충격으로 인해 혁명에 대한 신념을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조기에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들 중 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대신 이들은 전투적 민주주의자로서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의 권위에 대항했고, 유럽식 사민주의자로서 복지를 늘리는 데 앞장섰으며, 소박한 민중주의자로서 소외된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 투신했다.
2020년대의 반체제운동은 1980년대의 반체제운동보다 훨씬 오래갈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운이 좋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운이 나쁘다. 왜 오래갈 것인가? 일단 ‘권력 붕괴’가 어렵다. 1980년대의 반체제운동이 한국 외부의 권위에 의존했던 반면, 2020년대의 반체제운동은 한국 내부의 권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개신교다. 목사들 중 상당수가 윤석열에게 동조하거나 최소한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사이에 헤게모니 경쟁이 벌어지면서 서로 상승작용이 일어나 발언의 수위와 군중의 숫자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2020년대의 반체제 운동이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팩트 체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검색엔진과 위키피디아는 팩트 체크를 쉽게 해줬다. 반면 2010년대 이후 알고리즘과 팔로잉은 확증 편향을 심화시켰다. 소셜미디어가 정치적 양극화를 촉진한다는 연구가 넘쳐난다. 사실을 확인하기도 역사상 가장 쉬워졌지만, 동시에 선동을 당하기도 역사상 가장 쉬워진 것이다.
탄핵 반대 세력의 스타로 떠오른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남자가 ‘나는 여자다’라고 선언하면 곧바로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도 된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오류다. 이러한 일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미국 일부 주에서 ‘성별전환법’이 개정되면서 생긴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26일자 칼럼 ‘차별금지법 괴담, 팩트 체크 해보니’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전한길씨는 올해에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전자개표가 아니라 수개표로 진행해보자”고 주장했다. 역시 완벽한 오류다. 이미 수개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분류기를 거친 다음에 사람 손으로 한 장씩 일일이 확인했다. 비례대표 용지는 너무 길어서 분류기에 투입하지도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상식파’라고 부르지만, 그의 팩트 체크 능력으로 볼 때 그는 선동당한 자일 뿐이다.
그런데 전한길씨와 같은 사례는 1980년대 반체제 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96년에 나온 박명림 저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주도적 역할을 만천하에 드러낸 기념비적 저작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발적 확전설’이나 ‘남침 유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1980년대 후반 가장 널리 읽힌 대중적 현대사인 강만길 저 <한국현대사>와 박세길 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2000년대 이후 개정판을 거듭 내면서도 김일성의 전쟁 준비과정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 즉 반체제 운동의 영향하에서 팩트 체크를 회피하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다만 강만길 교수는 다른 저서에서는 김일성의 전쟁 준비를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펨코, 팩트 체크 힘으로 선동 안 당해
그런데 따지고 보면 북한이 계획적으로 남침했음을 알아내는 데 정교한 학술 연구까지 필요할까?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한 영토의 90%를 점령하고 미국이 한때 망명정부를 검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발적 확전설’이나 ‘남침 유도설’은 믿기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부정선거론을 반박하는 데 기존 대법원의 검증을 능가하는 추가 절차가 필요할까? 그 많은 개표원과 참관인들의 눈을 뚫고 더구나 여론조사 추이와 어긋나는 선거 결과를 조작해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다만 반체제 운동의 확증편향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비상식이 생산되는 것이다.
이번 계엄-탄핵 정국에서 펨코(에펨코리아)가 윤석열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도 팩트 체크의 힘이다. 펨코는 접속자 수 기준 대한민국 2위인 거대 커뮤니티로서 주로 젊은 남성들이 이용한다. 그런데 펨코에서 추천수가 높은 글들을 모아놓은 ‘포텐’을 보면 전한길씨의 선동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전무하다. 펨코에서 윤석열 지지자를 일컫는 흔한 호칭은 ‘내란견’이다. 이들은 놀랍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한다. 수도 이전을 통해 서울 쏠림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팩트’ 때문이다. 이들은 전태일 열사를 높게 평가한다.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진심을 다해 애썼다는 ‘팩트’ 때문이다.
물론 현대 과학철학과 뇌과학이 보여주듯이 선입견과 이론을 배제한 순수한 팩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펨코로 대표되는 ‘평균적인’ 젊은 남성들이 팩트 체크를 통해 ‘선동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지는 이들이 ‘선동에 능하다’며 비판한 페미니스트들과 맞서면서 얻은 획득형질이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가 최근 조국혁신당 주최 토론회에서 지금의 싸움이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헌정주의자 대 반(反)헌정주의자’의 대결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고 보십시오. 나중에 대선에서 가장 결정적인 그룹은 젊은 남성 그룹이 될 겁니다.” 적극 동의한다. 진보 진영에는 젊은 남성에 대한 각종 인상비평이 넘친다. 하지만 정체성 분석에는 민족지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2021년 7월8일자 칼럼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를 읽어보기를, 그리고 ‘평균적인’ 이대남을 헌정주의자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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