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리더십 위에서 정치의 ‘뉴딜’이 필요하다

2025-02-10

혼란의 한국, 어디로 가고 있나

2024년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에 관심을 가진 학자, 동료, 제자들은 계엄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이후 2017년처럼 빠르게 정상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한국이 아무리 역동적이라 하더라도 한 달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까? 특히 서부지법 난입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의 마음은 너무나 착잡하다. 한국 사회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1987년 이래 네 차례 정권 교체 거치며 민주주의 정착했다 착각

그러나 정치적 전환기마다 정치세력 간에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갈라치기는 대표적 포퓰리즘 수단…최근엔 ‘젠더’와 ‘중국’ 발굴

대공황 위기 미국 세계 최강으로 올려놓은 ‘거래의 기술’ 배워야

사회적 갈등의 기원

국가의 운명을 좌우했던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주년, 한일협정 60주년, 남베트남 정부 패망 50주년이 되는 해에 이런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헌법을 위반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위협받았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2017년과 같은 정상화 과정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현재 상황이 가져올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갈등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겉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4차례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안정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착된 것처럼 보였다. 정권교체가 될 때마다 40%가 넘는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했고,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치적 결정을 따랐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법원에 난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간과한 사실들이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위기의식이 커졌고, 몇 차례 정치적 전환점의 시기에 정치세력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겼고, 시대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전망과 정책 대신 냉전 시대의 망령을 끌어냈다.

정치적 변화와 깊어진 갈등의 골

1987년 민주화는 그 자체로 첫 번째 정치적 위기였다. 민주화와 탈냉전의 분위기는 냉전에 익숙한 보수세력들에 큰 위기가 될 수 있었다. 정권연장은 달성했지만, 1954년 여당인 자유당이 국회 다수당이 된 이래 처음으로 1988년 여소야대의 국회가 탄생했다. 보수 세력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북방정책이 발표되자,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이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 발표되었고, 정부 각료 중 한 사람은 민주화로 없어진 국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다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회담 과정에서 대통령의 훈령은 조작되었고, 군사문화 청산에 관해 글을 쓴 신문기자가 테러를 당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탄생으로 위기감은 더 고조되었다. 겉으로는 여당의 승리였지만,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당선과 함께 민주화 그룹이 정권과 국회의 핵심에 다가서게 되었다. 이때 김일성이 죽었고, 이로 인해 조문 파동과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이 정국의 태풍이 되었다. 이후 ‘친북좌파’라는 말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북미 간 제네바 합의에서 소외되었다.

종북과 적폐

두 번째 정치적 위기는 2002년에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탄생도 정치적 위기로 받아들여졌지만, 1997년의 금융위기와 DJP 연합으로 갈등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보수의 재집권이 예상되었던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그 충격은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집권 민주당에게도 상당히 컸던 것 같다.

2004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되었다. 이 때를 전후해서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그룹이 등장해 민주화 이후 쉽게 언급되지 않았던 권위주의 지도자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 친북을 넘어서 종북좌파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종북’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남과 나를 갈라치기함으로써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세 번째 위기는 2017년의 정권교체였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되었고, 보수정당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위기는 ‘적폐’라는 용어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적폐라는 용어가 가져다줄 충격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었다.

아직도 천안문에는 마오쩌둥 사진

이렇게 세 차례의 정치적 위기를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정치적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렇게 커진 갈등과 대립은 이제 사회적으로 탄핵을 둘러싼 대립으로 번지고 있다. 심지어 민주화 이후 흔들리지 않았던 헌법과 법률이 가진 권위마저도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위기의식으로 인해 심화한 사회적 갈등의 골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정치를 했어야 했던 대통령은 통합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과거만 탓할 수는 없다. 현 상황으로부터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위기의식과 상처를 최소화해야 한다. 1978년 개혁개방을 했던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이 후퇴시킨 중국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과거의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을 포용했다. 그는 천안문 망루 위의 마오쩌둥 사진을 자신의 사진으로 바꾸지 않았다.

갈라치기는 이제 그만

지도자는 정치를 해야 하며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여당만 있다고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정당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소위 엘리트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선거에서 졌다고 의회에 난입했던 사람들을 사면한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야당과 대화하며, 권위주의적 지도자들과도 만난다.

갈라치기를 통해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있는 정치인들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니 포퓰리즘에 의존한다. 비난할 대상을 만드는 것은 포퓰리즘의 가장 대표적 수단이다. 반공은 갈라치기에 가장 적절한 무기였다. 무엇이 공산주의인지, 무엇이 진정한 반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가장 보수적인 닉슨과 트럼프가 마오쩌둥과 김정은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갈라치기 전문가들이 그나마 새로 발굴한 이슈는 ‘젠더’와 ‘중국’이었다. 서로에 대한 혐오를 만들어내기 좋은 이슈이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젊은 세대의 고달픔과 불행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한 것이다. 탈냉전의 시대에 국가이익이 최우선이건만, 정치지도자로서 절대 꺼내서는 안 될 외교 문제까지도 포퓰리즘에 이용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연 ‘새로운 거래’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30년대를 생각해 보자. 1929년 대공황의 위기에서 독일과 일본은 비정상적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국수주의의 기치 아래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다른 아시아인들과의 차별을 통해 자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끔찍한 학살이 자행했으며, 결국 패망했다.

대공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완전히 달랐다. 미국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새로운 거래를 했다. 뉴딜(New Deal)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를 위해서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새로운 거래 및 합의에 도달했다. 뉴딜은 미국을 위기로부터 세계 최강 국가로 올려놓았다.

한국 사회도 늦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40년도 되지 않았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래와 합의가 필요하다. 새로 등장할 지도자는 갈등의 아이콘이 아니라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갈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었지만, 그로부터 일어났던 한국은 분명 지금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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