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3일 자신이 선포한 계엄령에 관해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의 군사시설 촬영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계엄의 발동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부정선거 및 중국의 선거개입설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국이 탄핵 촉구 집회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유상범 의원)는 등 사실 확인도 되지 않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이 중국·중국인 혐오를 극우세력 결집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이주민들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한남동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 중이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중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임신했음을 호소하는데도 욕설하며 폭행을 가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또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는 공간에서는 “한국인 아니냐, 한국말 해보라” “말 안 하는 것을 보니 화교다”라는 등 검열 행위를 하며 욕설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 온라인에서 이주민의 정체성을 밝힌 이들에게 욕설이 담긴 쪽지 등을 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이른바 ‘올포트 척도’는 사회적 편견의 징후를 반항적 말투나 혐오 발언, 회피, 차별, 신체적 공격, 집단학살의 5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올포트에 따르면 하위 단계의 행동을 용인할 수 있는 것 내지 ‘정상’으로 취급하면 다음 단계의 행동이 더욱 용인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외국인, 특히 중국인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 가해로 이어지는 현상의 기저에 바로 혐오 표현과 선동이 있으며, 이를 용인하는 순간 혐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킴을 알 수 있다.
정치적 혼란과 국가적 위기 속에서 그 화살을 외국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돌리는 일은 역사적으로 반복된 참상 중 하나이다. 1923년 일본에서 발생한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혼란을 틈타 테러를 도모하고 있다는 내용이 사실 확인 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유언비어가 전파되었다. 일본의 민간인 자경단과 군경은 6000~2만여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본어 발음이 서투르다며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을 살해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지진으로 인한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자경단의 학살을 묵인했다.
우리는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시민이 안전을 보장받는 가운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고 정의와 올바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민의 정치적 자유의 기본 중 기본이다. 현재 횡행하는 혐중 표현과 중국인에 대한 폭력은 개인의 신체 및 정신적 손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이주민 집단 전체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동등한 시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를 자청하는 국가의 시민이라면 불온한 공포 조장 등을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배포하고 혐오 정서를 선동하는 행위를 하거나 이에 동조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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